베를린영화제 경쟁부문에 오른 ‘밤과낮’
정서린 기자
수정 2008-02-16 00:00
입력 2008-02-16 00:00
달라진 점이라면 이번엔 파리의 일상이라는 것.8월부터 10월까지 34일간의 일상은 90%가 프랑스 파리의 현지 촬영으로 채워졌다. 언제나 반복되는 홍 감독 영화의 음주 장면. 녹색 소주병과 불콰한 얼굴이 등장하는 것도 여전하다.
이번 영화는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생활의 발견’‘오, 수정’등 홍감독의 7편의 전작 중 가장 밝은 외피를 입고 있다. 인물간의 대화는 겉돌지만 미묘한 웃음을 주고, 결말의 작은 거짓말은 관계와 사건을 파국으로 치닫지 않게 한다.
2007년 여름, 화가 성남(김영호)은 생애 처음 대마초를 피웠다가 경찰에 걸려 파리로 줄행랑을 친 참이다. 낮이면 하릴없이 도시를 돌아다니며 파리의 한인들을 만나고, 밤이면 국제전화로 아내에게 징징댄다. 그러던 그는 어느날 유학생 현주를 통해 그의 룸메이트 유정(박은혜)을 알게 된다.“유부남과는 절대 상종하지 않는다.”는 유정의 앙칼진 다짐은 조금씩 허물어지고 성남의 ‘밤과 낮’은 점점 다채로워진다. 성남이 북한 유학생(이선균)과 벌이는 이념과 팔씨름 신경전은 살가운 웃음을 더한다. 그러나 짧은 도피생활은 곧 끝난다. 아내가 수화기 너머로 울기 시작한다.“임신을 했다.”고. 성남은 유정이 임신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지만 파리의 생활을 접고 아내 곁으로 간다. 그러나 아내의 전화는 성남을 ‘귀향’시키기 위한 깜찍한 거짓말로 밝혀진다.
홍상수 감독은 이에 대해 “남자의 구원이 처의 거짓 임신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맘에 들었다.”고 말한다.“선한 의도가 거짓이란 틀을 통해 결과적으로 선을 이루어내는 형태가 가장 마음 편히 받아들일 수 있는 요즘의 신화”라는 게 감독의 시선이다.
지난 12일 서울과 베를린에서는 한 시간차를 두고 시사회가 열렸다. 외신들의 반응은 비교적 긍정적이다. 버라이어티의 영화평론가 데릭 앨리는 “‘밤과 낮’은 홍상수 감독의 영화 중 가장 밝고 관객이 소화하기 쉬운 작품”이라고 평가했다.“스스로에게 또 타인에게 하는 거짓말은 그의 작품에서 늘 있어왔던 주제지만 이 영화에서는 잘 캐스팅된 배우들을 통해 탁월하게 재활용됐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스크린 인터내셔널의 평론가 덴 파이나루는 “한국 영화로 가능할 수 있는 가장 프랑스적인 작품”이라며 “사랑스러운 장난 같은 영화이자 경쟁 작품 중 가장 기분좋은 영화”라고 말했다. 현재 경쟁부문에는 21개의 작품이 올라 있다. 황금곰(최우수 작품상)이 누구의 품에 안길 지는 17일 결정된다.15세 이상 관람가.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2008-02-16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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