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사는 조카 의연이의 결혼식에 간 어머니를 매일같이 찾으면서도 아버지는 오늘도 빈 말씀(?)을 하십니다. 이래서 가끔씩 떨어져 있어 봐야 부부간의 금실이 더 좋아진다고 하나 봅니다. 어머니의 빈자리를 잠시라도 메우는 역할은 자식들 몫이지요. 덕분에 그사이 못 나누었던 이야기보따리를 이참에 한껏 풀어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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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순을 훌쩍 넘어 구순을 내다보는 아버지의 옛이야기는 마치 파노라마처럼 흘러갑니다. 코흘리개 시절 대동강(大同江)을 헤엄쳐 건너가다 죽을 뻔한 일, 할아버지가 그 강에서 잡으신 숭어를 맛나게 먹던 기억, 초등학교 시절 일본인 교장이 훈시하던 바로 그때, 하필 옆자리의 친구가 뀐 방귀 소리에 웃음이 터져 ‘못된 조센징’이라고 실컷 얻어맞았던 일. 지금껏 수백 번도 더 들었을 이야기들이 오늘따라 이상하게 다 새롭습니다. 한국전쟁 때 어머니와의 운명적인 만남, 부산 피난 시절의 결혼, 어느덧 6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사이 두 분은 아들 넷, 며느리 넷, 여덟 명의 손자, 손녀를 둔 부자(?)가 되었고, 보름 전에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증손주 소식도 들었습니다. 마침 그날은 어머니의 80세 생일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