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좋아서 만든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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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9-12-15 12:18
입력 2009-12-15 12:00

행복을 ‘자가생산’하는 멋드러진 여유

선호(選好). 누구에게나 선호하는 것은 있다. 그리고 선호에 따라 살기를 원한다. 좋아서 하는 일을 할 수 있다면 행복은 자연스레 따라오는 것이라 믿으면서.

하지만 이게 마냥 쉽지는 않다.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고 부모님께 털어놨더니 호적을 파겠다고 겁박을 주신다. 친구들도 날 보는 눈빛이 이상하다. 얼키고 설킨 인간관계 속에서 마냥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건 이토록 어렵다. 과연 가족이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을 배겨 낼 수 있을지, 친구들도 멋있다며 어깨를 토닥여 줄지 여간 고민되는 게 아니다.

영화 ‘좋아서 만든 영화’의 네 주인공은 그저 음악이 좋아 모인 거리 음악가들이다. 밴드 이름도 영화와 비슷한 ‘좋아서 하는 밴드’다. 다큐멘터리 영화이니 모두 ‘실존 인물’이고 ‘실제 상황’이다. 음악이 좋아서, 사람이 좋아서 길거리 음악을 하던 이들은 서울과 제천, 부산 등 전국으로 초대받지 않은 투어를 떠난다.

관계(關係). 음악이 좋아 모인 사람들이 좋아서 밴드를 만들고 좋아서 노래를 부르지만 다시 ‘관계’라는 난제가 그들을 기다리고 있다. 마냥 좋을 줄만 알았는데 이들과의 관계가 깊어질수록 갈등이 생긴다. 음악을 좋아한다는 공통 분모가 있을 뿐 서로의 취향도 다르다. 사사건건 의견이 다르고 때론 부딪힌다. 그리고 되묻는다. “이거, 내가 좋아서 하는 일 맞아?”

관계의 역경(?)을 뚫고 좋아서 하는 일을 선택한 사람들이 다시 관계의 역경을 만나버린 역설적인 상황. 좋아서 하는 일도 금세 별 수 없이 하는 일로 변질돼 버린 셈이다. 사실 우리도 이런 상황이 익숙하다. 막상 내가 원하는 일을 시작하더라도 고난이 닥칠 때가 많다. 그리고 그 힘겨움은 관계가 꼬이면서 시작된다. 결국 ‘선호’가 ‘관계’를 만나면 행복은 다시금 요원해지는 것일까.



선호. 영화는 다시 선호로 돌아온다. 비록 관계가 그들을 속일지라도(?) 이들은 음악에 대한 선호를 바꿀 의향이 없다고 다짐한다. 좋아서 한다고 행복이 보장되지는 않지만, 행복의 가능성을 상쇄시킬 만큼 세상은 그리 각박하지 않다고 믿는다. 그래, 한번 해 보는 거야. 얼키고 설킨 이 관계 속에서도 좋아서 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그들은 이렇게 행복을 ‘자가생산’ 한다. 이들의 멋드러진 여유를 배워 볼 수 있는 영화다. 17일 개봉.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2009-12-15 1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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