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기 세대에 띄우는 ‘추억의 노트’
심재억 기자
수정 2007-08-27 00:00
입력 2007-08-27 00:00
스스로 단식을 ‘참으로 유서 깊은 항의 방식이자 치명적이기도 하고 근본적이기도 한 자기성찰 행위’라고 규정해 놓았다. 그런데 세상을 바꾸겠다고 나섰다가 콩밥을 먹게 된 ‘전사’가 별것도 아닌 고추장 한 숟갈을 두고 이처럼 엉망으로 망가졌다니, 그런 일탈 같은 분란이 읽는 사람에게는 마른 목줄기를 타고 내리는 소주의 짜릿함과 흡사한 체험이기도 하고, 또 속살 간지럽도록 재밌는 것은 그걸 여태 속에 담아 뒀다가 군내가 나도록 곰삭은 뒤 오롯하게 고백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비록 종(種)과 유(類)는 다를지라도 항상 가슴에 앙금처럼 남아 돌이킬 때마다 일말의 부끄러움으로 남는 사람들의 기억을 그는 이렇듯 자신의 이름으로 반추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그래선지 그의 글편은 따뜻하다. 소설가 현기영은 이런 그의 글에 ‘인간 내면에 가 닿는 그의 웅숭깊은 시선은 이름 없이 흩어지고 사라진 이들을 망각의 어둠으로부터 불러내 우리 앞에 살아있게 한다.’는 다소 우울한 평을 덧붙였지만 유신의 어둠 속을 몸부림으로 헤쳐나온 치열한 시절의 기억답지 않게 글은 온건하면서도 비루하지 않다.‘특별한 시절’을 읽어내는 그의 위치가 그리 특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책에 올려진 54쪽의 산문 한 편, 그 속에 걸친 글 몇 줄이 내내 뇌리를 떠돌았다. 현란한 미문도 아니고, 심오한 깨우침의 그것은 더더욱 아닌데, 그렇다고 여기면서도 한동안 그 글의 잔영을 떨치지 못하게 한다.
그것은 오로지 그와 그 글을 읽는 문학 소비자들이 격정의 시대에 관한 추억을 공유하기 때문이리라. 책 말미에 그는 이런 고백을 붙여놨다.“지나놓고 보니, 우리의 삶도 이젠 하나의 이야기가 되었다.”고. 이 고백처럼 소설가 김영현은 정말 지금을 체념하면서 살고 있는 걸까.9500원.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2007-08-27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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