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성 표현 한계 그리고 빌어먹을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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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서린 기자
수정 2007-07-02 00:00
입력 2007-07-02 00:00
‘외로운 작업에 골몰하는’ 사람들이 있다. 소위 쓴다는 사람들, 문인들이다. 그들에게도 ‘적’은 있다. 문예지 현대문학 7월호(631호)는 시인과 소설가 17명한테서 ‘내 문학의 적’이 무엇인 지 고백을 받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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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인들의 고백에는 해학과 의뭉스러움이 넘친다. 목사이자 소설가인 조성기씨는 태연하게 되묻는다.“문학이 내 인생의 적인데?”그러면서 털어놓는다. 종교와 성을 과감하게 다루지 못하는 게 덫이란다.

시인 김영승씨는 술도, 저널리즘도, 종교도, 직장도, 자기 자신도 적이 아니라고 도리질을 치다가 적조차도 없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겁에 질려했다. 그러다 마침내 찾아냈다. 시인이 아닌 개인으로서 그를 갇히게 하는 모든 ‘관계’가 적임을. 기자이자 시인인 김중식씨는 ‘모범문인’이다.“내 시의 적은 시를 쓰고 생각하는 절대 시간의 감소였다. 재능과 열정은 작업시간에 비례한다.”는 그의 토로가 이를 방증한다.

시인 강정은씨는 “피자 조각내듯 또박또박 갈라진 영혼의 지리한 평화상태”를, 시인 김민정씨는 “빌어먹을 돈”을 적으로 지목했다. 소설가 편혜영씨는 사무원으로서의 자신과 소비자로서의 자신, 시청자로서의 자신에게 자꾸 진다고 투덜댔다. 그러나 결국, 문제는 이야기라고 토로했다.

시인이자 불교방송 프로듀서인 문태준씨는 굼뜸과 일곱 살을 적으로 꼽는다. 하지만 문 시인은 이 적들과 맞설 생각이 없다.“이들에게 나는 기꺼이 항복이다. 필패다.”

아이들이 발목을 붙잡았다는 시인 문정희씨는 글 말미에서야 솔직해진다.“나는 내 아이들이, 내가 낳은 이 아름다운 생명이 죽은 시와 비교할 수 없을 만치 중요하다는 것을 똑똑히 알았다.”

다음 그녀의 독백은 문인 모두를 향한 외침으로 들린다.“그냥 쓰고 또 써라. 그것이 전부임에랴.”아무리 적에게 책임을 전가한들, 결국 문인은 쓸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는 얘기다.

정서린기자 rin@seoul.co.kr
2007-07-02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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