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명 수행하다 기생 만나…”
초당은 황진이와의 로맨스로 잘 알려진 화담 서경덕(1489∼1546)에게 배웠다. 왕명으로 출장을 가서 기생과 여기저기를 놀러다니며 즐긴 뒤 청룡포에서 헤어져 한스러웠다는 옛일을 회상하고 있다. 그 스승에 그 제자다. 국립중앙박물관이 10일 펴낸 ‘간찰(簡札)1’에 실려 있다. 간찰이란 편지다. 소장자료인 ‘명가필적집(名家筆蹟集·훌륭한 업적을 남긴 사람들이 쓴 글을 모은 책)’에서 108통의 편지를 번역하고 주석을 달았다.
“소생은 봄에 병을 얻은 뒤 지금까지 죽지 않아 하나의 쓸모없는 존재가 되고 있을 뿐”이라는 우리나라 성리학의 선구자 안향(1243∼1306)의 편지에서는 대학자의 겸양이 가득 묻어난다.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한 태허정 최항(1409∼1474)의 편지에서는 “어찌 그리도 저를 가엽게 여기어 늘 생각해 주심이 이처럼 지극할 수 있느냐.”며 친구와의 우의를 다지고 “부채 네자루를 보내주심에 우러러 감사를 드린다.”며 추신으로 적었다. 선물을 보내준데 감사하는 편지를 쓰는 조선시대 법도를 추측할 수 있게 한다.
세종의 손자인 명신재 이보(1444∼1470)는 편지에서 “면천에 사는 홍생 박원은 바로 이 아우의 친척”이라면서 “지금 천리길을 가게 되니…형께서는 어찌 이 아우의 친한 사람의 일에 대하여 소홀하게 주선함으로써 나의 낙막한 한탄을 자아내게 할 수 있겠느냐.”고 청탁을 하고 있다.
이밖에 서애 유성룡과 퇴계 이황, 송강 정철, 오리 이원익, 상촌 신흠, 농암 이현보 등의 편지도 실려 있다.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