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시조 당선작] 국립중앙박물관/한분옥
수정 2006-01-02 00:00
입력 2006-01-02 00:00
투명한 유리 집에 한 여인이 살고 있다
천년이 흘러간 뒤 다시 천년 반석에 놓여
꽃 같은 싱싱한 웃음,늘 그 자리에 바치고
세속 모든 언어들이 여기와 갈앉는다
풍경도 울지 않는 채,감도는 작은 고요
해묵은 청동의 녹이 봄빛 파랗게 물들이고
가까이 다가서면 이웃집 아낙도 같은
어쩌면 옷깃 한번 스치고 간,머언 인연 같은
아니야,나를 어루신 우리 어머니 손길 같은
실선 따라 흘러내린 빛나는 고운 눈썹
떨쳐낸 유혹하며 숨겨진 예감하며
살 에는 바람 소리도 춥지 만은 않구나
■ 당선 소감 “시조는 내 숙명의 사막…비단길 열릴때까지 계속 걸을 것”
시조는 나에게 있어 두려움의 대상이자 꼭 걸어가야만 했던 사막임에 분명합니다. 이 막막한 사막이 비단길로 열릴 때까지 앞서간 분들의 정신세계를 흩트려 놓거나 가볍게 여기지 않겠습니다. 고독과 사색의 늪에 깊이 빠지는 것만이 우리가락 전통 시문학의 맥을 이어갈 수 있으리란 확신을 가져 봅니다.
늦은 시작의 선상에 서서 출발의 신호가 내려지기까지는 많이도 초조하긴 했지만,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님을 말하고 싶습니다.
부족함 앞에 큰 선물인 용기를 심어 주신 선생님, 좋은 인연 맺어주신 서울신문사에 고통 뒤에 다가선 세상이 이리도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는 말로 인사를 대신합니다.
■ 한분옥 약력 ▲1951년 경남 김해 출생 ▲부산교대 및 동 대학원 졸, 울산대 행정학과 박사과정 수료 ▲예술계 신인상 수필 당선 ▲제7회 가람 이병기 추모 시조공모전 장원 ▲울산중앙초등학교 교사
■ 심사평 “손길 닿는듯 감각적 시어 돋보여”
응모된 작품들은 예년에 비해 높은 수준을 보였다. 해가 거듭될수록 시조에 대한 관심과 열의가 그만큼 깊다는 점에서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 생각한다.
이호정기자 hojeong@seoul.co.kr
당선작 한분옥의 ‘국립중앙박물관’은 우리 문화의 중추적 사물을 대상으로 설득력 있게 파고 들어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진술한 전개가 아니라 손길에 닿는 감각적 표현으로 시선을 끈 수작이다.
이밖에 최종심에 오른 작품은 김종학의 ‘늦가을, 남천강에서’, 조성문의 ‘다도해 무화과’, 한마루의 ‘자음과 모음(문자 메시지)’, 정행년의 ‘월포리 단상’ 등으로 이들 네 사람의 작품은 모두 시조의 기본 형식에 충실하면서도 각자 나름대로 개성있고 고른 수준을 보여준 작품들이다. 김종학의 ‘늦가을, 남천강에서’는 언어의 조탁이 상당한 수준에 이른 작품으로 당선작과 마지막까지 겨뤘으나 아깝게 밀려났다. 조성문의 ‘다도해 무화과’는 안정감을 주는 대신 평이한 표현으로 참신성이 결여돼 보였다. 한마루의 ‘자음과 모음(문자 메시지)’은 현대적 소재를 무리없이 전개한 작품이다. 다만, 생경한 시어로 작품을 가볍게 만든 점이 아쉬웠다. 정행년의 ‘월포리 단상’은 동일한 작품을 타사에도 응모한 것이 문제로 지적되었다.
이근배 한분순
2006-01-02 25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