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儒林 속 한자이야기] <102>白面書生(백면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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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5-12-24 00:00
입력 2005-12-24 00:00
儒林(487)에는 ‘白面書生’(힌 백/얼굴 면/글 서/낳을 생)이 나오는데,‘희고 고운 얼굴에 글만 읽는 사람’이란 뜻으로,‘한갓 글만 읽고 세상일에는 전혀 經驗(경험)이 없는 사람’을 일컫는다.白面郞(백면랑)이나 學究(학구),措大(조대)도 이와 類似(유사)한 말이다.‘白’의 字源(자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주장이 있으나 ‘머리’라는 설이 타당해 보인다.

‘白’에는 ‘희다’의 뜻 외에도 ‘아뢰다’ ‘말하다’ ‘없다’ ‘비다’ 등이 있다.用例(용례)에는 ‘白頭如新(백두여신:오랫동안 사귀어 온 사이지만 서로 간의 정이 두텁지 못함을 비유),白書(백서:정부가 정치, 외교, 경제 따위의 각 분야에 대하여 현상을 분석하고 미래를 전망하여 그 내용을 국민에게 알리기 위하여 만든 보고서) 등이 있다.

‘面’자의 甲骨文(갑골문)은 사람 얼굴 안에 ‘目’(눈 목)이 있는 형태이다. 얼굴이란 뜻을 표현하는데 눈을 강조한 것은 사람의 印象(인상)에서 눈을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여긴 때문이라고 한다. 후대로 오면서 ‘만나다, 향하다, 겉, 방향’과 같은 여러 가지 뜻이 派生(파생)하였다.用例에는 ‘面目(면목:얼굴의 생김새. 사람이나 사물의 겉모습),面識(면식:얼굴을 서로 알 정도의 관계)같은 것들이 있다.

‘書’자의 위쪽은 ‘聿’(붓 율)은 붓을 잡고 있는 모양이며, 아래쪽은 ‘날’(日)이나 ‘말하다.’(曰)가 아니라 먹물이 담긴 벼루의 모양이다. 본래의 뜻은 ‘글을 쓰다.’이며 글을 써둔 ‘책’을 가리키기도 한다.用例로는 ‘書庫(서고:책을 넣어두는 곳집),書案(서안:책상, 문서의 초안),良書(양서:내용이 교훈적이거나 건전한 )’ 등을 들 수 있겠다.

‘生’자는 풀 포기의 상형인 ‘ ’(철)과 地表(지표)를 나타낸 ‘一’을 합쳐 ‘땅을 뚫고 나온 새싹’의 모양을 나타냈다.用例(용례)에는 ‘生家(생가:자기가 태어난 집),生老病死(생로병사:사람이 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네 가지 고통 등이 있다.

南北朝時代(남북조시대)에 宋(송)과 北魏(북위)는 江南(강남)의 四鎭을 둘러싸고 尖銳(첨예)하게 대립해 있었다.西紀(서기) 449년, 북위의 太武帝(태무제)가 柔然(유연:몽골 땅에 자리 잡고 살던 고대의 유목민족)을 공격하였다. 송나라의 文帝(문제)는 북위를 制壓(제압)할 수 있는 絶好(절호)의 機會(기회)로 보고 文臣(문신)들과 구체적인 방법을 論議(논의)하였다. 이때 武官(무관)인 심경지(沈慶之)는 북위와의 빈번한 전투에서 패배했던 前例(전례)를 들어 섣부른 出兵(출병)에 반대하며 다음과 같이 進言(진언)하였다.

“밭갈이는 종에게 물어보고, 베를 짜는 일은 하녀에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적국을 공격하려고 하시면서 백면서생과 圖謀(도모)하시니 어찌 적을 이길 수 있겠사옵니까.”(田事可問奴 織事可問婢.今陛下 將欲攻敵國 與白面書生謀之 事何由濟)



이 이야기는 ‘宋書’(송서)의 ‘沈慶之傳(심경지전)에 전한다. 그는 열 살의 나이에 이미 東晉(동진)의 遺臣(유신:왕조가 망한 뒤에 남아 있는 신하) 손은(孫恩)이 逆謀(역모)를 꾀하자 私兵(사병)을 이끌고 參戰(참전)하여 武名(무명)을 떨쳤다. 그 후 수많은 戰功(전공)을 세워 建武將軍(건무장군)에 임명되어 邊境(변경) 守備(수비)를 總括(총괄)한 百戰老將(백전노장)이었다.專門家(전문가)의 忠言(충언)을 무시한 卓上空論(탁상공론)이 실패를 부를 것은 너무도 자명한 일이었다.

김석제 경기도군포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2005-12-24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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