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낮, 조세희 작가를 만난 곳은 서울 대학로의 한 음식점이었다.200쇄 돌파를 자축하고자 마련된 자리였다. 때마침 대학로는 시위 도중 사망한 농민 전용철씨를 추모하고, 쌀 협상 비준을 반대하는 농민대회로 소란스러웠다.“내가 산 세월의 흔적을 가장 가까이에서 담아내고싶어서” 요즘도 카메라를 들고 온갖 시위 현장을 빠짐없이 다닌다는 작가는 바깥 상황에 신경이 쓰이는 눈치였다.
“40대 아버지가 중학생 아이에게 ‘난쏘공’을 사줬더니 책을 읽고 나서 ‘아빠, 이 소설 옛날 이야기가 아니네.’라고 했다는 얘길 들었다. 내가 책을 쓸 때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았을 아이들이 이제 이 책의 독자다. 어쩌면 그건 욕이다. 그만큼 이 시대가 여전히 어두운 상황에 놓여있다는 얘기가 아닌가.”
1965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한 작가는 “좋은 작품을 쓸 자신이 없어” 곧 작가 되기를 포기했다. 작가가 아닌 직장인이 되어 70년대를 살던 그는 재개발지역에서 강제철거현장을 직접 목격한뒤, 이를 토대로 1975년 ‘칼날’을 발표했고, 이후 12편의 난장이 연작을 펴냈다.
그는 “초판때 문학평론가 김현이 ‘그 책 좋아,8000부는 나갈 거야.’라고 하기에 농담 삼아 ‘3년간 혼신을 다했는데 고작 그거야.’라고 대꾸한 적이 있지만 이렇게 200쇄까지 찍을 줄은 몰랐다.”고 감회를 밝혔다.“‘난쏘공’은 별게 아니다. 힘들게 살아가는 동시대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록한 것일 뿐”이라는 그는 “혁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이 사는 세상에 꼭 필요한 사랑이야기여서 30년의 생명력을 가진 게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우리 사회가 벼랑끝으로 몰리고 있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쓴 ‘난쏘공’은 그가 ‘벼랑끝에 세운 위험표시 팻말’이었다. 하지만 30년이 흐른 지금도 그는 절박감을 느낀다고 했다.“전체가 노력하지 않으면 힘든 시간은 계속될 것이다.”
그는 ‘난쏘공’에서 못다한 이야기를 쓴 ‘하얀 저고리’의 출간을 몇년째 미루고 있다.“마음에 안 드는 부분이 있어 못내고 있다.”고 설명한 그는 “(책을)내긴 낼 것이다. 죽은 뒤에라도 꼭 내겠다.”며 웃었다.
글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사진 손원천기자 angler@seoul.co.kr
2005-12-02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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