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주의 늪에서 니체 구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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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성 기자
수정 2005-11-10 00:00
입력 2005-11-10 00:00
포스트모던 바람을 타고 요즘은 ‘존재’보다 ‘사건’이라는 단어가 인기있는 듯하다. 그런데 이게 우리에게 쉽게 와닿지 않는다. 언어습관 때문이다. 대표적인 게 be동사다.‘He was dead.’의 참된 번역은 ‘그는 죽었다.’가 아니라 ‘그는 죽은 상태로 존재한다.’다. 항상 존재를 전제한 뒤 그 존재가 이런 상태에 있다고 설명하는 세계관이 바로 be동사다. 사건의 철학자들은 이 be동사의 세계관을 집요하게 공격한다. 죽어 있는 상태로 존재한다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죽음으로 변화했다고 봐야 한다는 것. 이렇게 보면 존재가 있고 그게 불거지면 사건이 되는 게 아니라, 사건 자체가 존재가 될 뿐 아니라 존재는 사라지고 사건만 남는다. 여기서 갈림길이 생긴다. 수증기처럼 흘러다니는 사건을 손가락 사이로 흘려보낼 것이냐, 아니면 비록 촉촉한 물기만 남더라도 손을 오므려 쥐어야 하느냐.

슬로베니아 학술원 철학연구소 연구원 알렌카 주판치치는 그래도 오므려 쥐어보자고 제안하는 쪽이다. 그래서 니체를 재해석한 ‘정오의 그림자’(도서출판 b 펴냄)를 내놨다.

알려졌다시피 니체는 독특한 문체와 문제의식으로 근대를 넘어선 철학자로 평가받으며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의 큰 관심을 끌었다. 그런데 주판치치는 니체를 그렇게 읽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이미 해석되고 이해된 니체가 아니라, 니체 그 자체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 그렇기에 주판치치는 니체의 중기 사상인 ‘정오’,‘한낮’의 비유를 파고든다.‘한낮’이라면 모든 그림자가 사라지는 때라는 이미지를 그리지만, 니체는 그림자가 가장 짧은 때, 즉 사물이 그림자를 다른 곳에 드리우지 않고 스스로 그림자 자체가 되는 때라 한다. 이 비유를 끌어와 주판치치는 포스트모던 이론가들이 그리고 있는 회의주의와 상대주의에 빠져든 니체가 아니라,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긍정과 생성을 품고 있고 드러내보였던 철학자로서 니체를 제시한다. 주판치치는 최근 주목받고 있는 슬라보예 지제크와 함께 ‘슬로베니아학파’로 불리는 철학자다.

때마침 니체와 관련된 반가운 소식이 하나 더 있다.‘책세상’에서 니체 전집 21권을 완간한 것. 특히 이 가운데 유고집 14권은 이번에 처음 번역됐다. 니체 정본으로 공인된 독일 발터 데 그루이터사의 니체비평전집을 원본으로 삼아,3년 동안 번역 표준안을 마련하는 등 세심한 준비작업 끝에 번역한 것이다.1998년부터 시작된 작업이니 완간에만 7년이 걸린 셈이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2005-11-1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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