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은진 감독 데뷔작 ‘오로라공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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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수정 기자
수정 2005-10-22 00:00
입력 2005-10-22 00:00
강단있기로 소문난 여배우의 감독 데뷔작은 역시나 기대할 만했다.27일 개봉하는 스릴러 ‘오로라 공주’(제작 이스트필름)로 ‘감독 방은진’은 강렬한 첫 펀치를 날렸다. 그의 첫 선택은 한 여자의 잔혹한 복수극. 그 대목에서 영화는 극장가에 여진을 남기고 있는 ‘친절한 금자씨’와 분위기상의 계보를 함께한다고 할 만하다.

어린 여자아이를 심하게 구박하는 여자가 백화점 화장실에서 잔인하게 살해된다. 살인자의 정체에 물음표를 찍는 게 아니라 그의 동선을 적나라하게 잡아 화면을 채우는 접근방식에서부터 감독의 두둑한 배짱이 읽힌다. 외제자동차 외판원인 30대 여자 정순정(엄정화)의 이유를 알 수 없는 잔혹살인은 한동안 계속된다. 대형 웨딩홀을 운영하는 바람둥이 졸부(김용건)와 그의 밀회 파트너(현영), 택시기사(김익태), 갈비집의 마마보이 청년(박효준) 등이 줄줄이 정순정의 표적이 된다.

여주인공의 연쇄살인 동기를 알 수 없어 수동적인 관람밖에 할 수 없는 관객에게 영화는 강력반 형사 오성호(문성근)에게 사건해결을 맡김으로써 작은 힌트를 귀띔해준다. 오 형사는 다름아닌 정순정의 전 남편. 살인현장에 남겨지는 오로라 공주 스티커, 백화점 폐쇄회로 카메라에 찍힌 정순정의 모습 등을 확인한 오 형사는 정순정의 범행을 직감하면서도 늘 한발 늦은 보폭으로(의도적인 듯) 범행현장을 맴돌 뿐이다.

영화는 심리스릴러물의 ‘핵’인 반전을 비교적 일찌거니 공개한 뒤 관객의 공감을 얻어가는 전략을 썼다.‘모성(母性)의 처절한 복수드라마’라는 수식어 이외의 설명은 스포일러가 돼 버릴 만큼 반전장치가 선명하다. 너무 빨리, 너무 분명하게 드러나는 살인의 이유와 반전의 모양새는 오히려 아쉬울 정도. 정신병리학적으로 따져야 하는 ‘이유없는’ 살인스릴러에 익숙해진 관객들로서는 메시지가 부담스럽게 투명한 셈이다.

긴장의 강도를 일관되게 유지하는 드라마는 크게 흠잡을 데 없는 밀도를 갖췄다. 그러나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한 법. 전반적으로 감정의 습도를 좀 낮췄더라면 하는 안타까움이 크다. 돈으로 죄값도 치를 수 있다고 믿는 냉혈 변호사(장현성)를 크레인에 묶어놓고 울부짖는 정순정의 마지막 쓰레기장 인질극에는 긴장미가 뚝 떨어질 정도로 감정과잉이다. 억울하게 아이를 잃은 모성의 치밀한 복수극이라고 하기엔 여주인공의 감정 톤이 지나치게 높다.18세 이상 관람가.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2005-10-22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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