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길수교수 “고대중국, 국내성 지배설 근거없다”
수정 2004-11-26 00:00
입력 2004-11-26 00:00
지금까지 중국 지배설의 근거는 고구려가 2대 유리명왕 22년(서기 3년) 국내성으로 천도하기 전 한(漢) 또는 진(秦) 등 고대 중국의 여러 나라 중 하나가 쌓은 토성이 있었다는 전제하에 가능한 것이었다. 나아가 국내성이 고구려 건국 이전에는 한(漢)이 이 일대에 설치한 군현 중 하나인 현토군(玄兎郡) 치소(治所·군 소재지)였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서 교수에 따르면 이같은 주장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국내성 석축(石築) 성벽이 기존에 있던 토성을 허물고 지어졌음이 규명되어야 하고, 나아가 먼저 쌓았다는 토성이 고구려 건국 혹은 천도 이전에 있었다는 증거가 확보되어야만 한다는 것.
하지만 서 교수는 1975∼77년에 이어 2000년에 중국이 실시한 국내성 성벽 발굴조사 결과를 면밀히 검토한 결과 현재의 국내성 석축 성벽 안에 또 다른 토성이 있었다는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중국측의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국내성 성벽 10군데를 잘라 시굴조사를 벌였으며, 각종 석기류와 토기조각 등이 출토됐다. 또 10군데 중 3군데에서 단단한 흙두둑이 발견되기는 했으나, 판축(版築)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보아 한(漢)대 이전의 중국이 쌓은 토성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2000년 실시된 시굴조사에선 그나마 흙두둑의 흔적조차 없었다.
서 교수는 27일 단국대에서 개최되는 고구려연구회(회장 서영수) 주최 추계학술대회에서 ‘오녀산성ㆍ국내성ㆍ환도산성에 대한 새로운 고고학적 성과’란 논문을 통해 이같은 사실을 발표할 예정이다.
임창용기자 sdragon@seoul.co.kr
2004-11-26 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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