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 이슈] 낙서도 이젠 당당한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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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4-11-24 07:06
입력 2004-11-24 00:00
세계의 도시 특히 뉴욕의 지하철에서는 흔히 스프레이 물감을 이용한 낙서그림을 볼 수 있다. 그래피티 아트(graffiti art) 또는 스프레이캔 아트(spraycan art)라고 불리는 낙서미술이다. 이런 그래피티 미술이 ‘거리의 예술’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차세계대전 이후부터다. 경기장 벽이나 지하철, 거리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소외되고 억눌린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예술. 도시의 골칫거리로 치부되던 그래피티가 현대미술로 인정받게 된 데는 무엇보다 ‘검은 피카소’ 장 미셸 바스키아와 80년대 거리문화를 이끈 키스 해링의 공이 크다. 낙서미술계에서 가장 유명한 이들은 그러나 불행하게도 각각 마약중독과 에이즈로 요절하고 말았다.

미국에선 이미 1989년에 낙서미술관까지 문을 열었을 만큼 그래피티 아트가 자리를 잡았다. 이 자유분방한 영혼의 예술은 이제 우리에게도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서울 서교동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스타일 큐브 잔다리에서 19일 동안 열린 ‘거리의 작가’전은 ‘한국적’ 낙서미술의 가능성을 보여준 하나의 시험무대였다. 전시에는 jnjcrew, day­z, wk라는 예명으로 활동하는 20대의 세 팀이 참가했다. 특히 가수 서태지와의 공동작업으로도 잘 알려진 day­z는 인간 내면에 잠재된 분노의 감정을 ‘악마’라는 소재를 통해 표현해 눈길을 끌었다. 한국의 대표적인 낙서미술가라 할 이들은 자신의 느낌과 생각을 일러스트와 애니메이션, 기하학적 문양, 문자 등 다양한 형태를 통해 보여줬다.

90년대 초반부터 힙합문화와 함께 발전하기 시작한 한국의 그래피티 아트는 아직은 걸음마 단계다. 외국의 경우 하나의 독립된 장르, 나아가 제3의 예술로 인정받고 있는 데 비해 우리는 여전히 ‘낙서’라는 고정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이번 전시는 ‘그림은 이렇게 그려야 한다.’는 박제된 미술교육을 받아온 이들에게 상상력의 물꼬를 터주는 계기가 됐다. 개막일에는 100여명의 그래피티 팬들이 전시장에 몰리는 등 우리 낙서미술 인구가 만만치 않음을 보여줬다. 이번 ‘거리의 작가’전은 우리에게도 바스키아나 해링 같은 낙서미술의 대가가 나올 날이 머지않았음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우리의 일상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는 그래피티는 이제 ‘비(非)예술’‘반(反)예술’의 수모에서 벗어날 때가 됐다. 그 자체 예술로서 당당히 심판받아야 한다.

김종면기자 jmkim@seoul.co.kr
2004-11-24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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