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운동가 출신 안재성 ‘경성 트로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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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4-08-13 00:00
입력 2004-08-13 00:00
그것은 불행이었다.숨가쁘게 근·현대사의 격랑을 헤쳐온 우리가 일제에 온몸으로 저항했던 사회주의 혁명가들,우리를 위해 싸웠던 그들의 투쟁을 기억할 자료는 물론 관용조차도 갖지 못한 채 살아왔다는 사실은 불행이었다.

그 불행한 역사를 복원한 노동운동가 출신 소설가 안재성의 ‘경성 트로이카’(사회평론 펴냄)는 이런 점에서 마치 깨어진 유리잔을 그럴듯하게 다시 맞춰낸 것 같은 작품이다.그는 우리 근대의 불행한 상실을 그렇게 복원해 냈다.

스스로를 ‘삼류 작가’라고 말하는 그는 우리 문단의 현실,너무 관념적이고,너무 추상적이어서 오히려 비열해 보이기까지 하는 현실을 대체할 작가적 역량이 어떻게 축적되고,발현되는가를 작품으로 말해주고 있다.일제의 광기가 노도를 이루던 1930년대의 공간을 치열한 투쟁으로 채우다 간 사회주의 혁명가들,이재유와 김삼룡,이현상 등 3인의 행적을 통해 국내에서 일제에 맞선 사회주의 운동가들의 섬광 같은 삶을 당대의 어투로 진지하게 재건해 내고 있다.

이재유.자신의 순수에 가해질 이념의 덫칠이 두려운 듯 사회주의 항일투쟁 외길에서 싸우다 광복 10개월을 남기고 홀연 죽음을 맞은 그의 삶은 오랫동안 잊혀졌던 탓에 후대에 더 많은 부채의식을 남긴 당대의 몇 안 되는 ‘조선의 희망’이었다.무학력자,무산자로 일본에서 사회주의 운동을 펴다가 3년 동안 무려 70회나 경찰에 연행당한 끝에 조선으로 강제 송환됐으며,악명 높은 서대문경찰서에서 2번이나 탈출한 그의 치열성은 “후일 그를 체포한 일경들이 너무 기쁜 나머지 그와 기념촬영을 할 정도였다.”는 증언에서도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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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산자 희망' 이재유 '남로당 리더'김상룡…
'무산자 희망' 이재유 '남로당 리더'김상룡… '무산자 희망' 이재유 '남로당 리더'김상룡 '빨치산 신화' 이현상 (왼쪽부터)


그와 함께 트로이카를 이루는 김삼룡은 광복 후 남로당의 실질적인 리더로 활약했으며,지리산을 누빈 이현상은 지금까지도 ‘빨치산의 신화’로 남아 있다.또 이들에게 적잖은 힘이 됐던 박헌영의 모습도 소설이라는 허구 속에서나마 만나볼 수 있다.

작가 안재성은 그러나 이들의 삶을 마냥 허구로 분식하지 않는다.그런 점에서 그가 영웅담을 창조해 낸 것이 아니라 기왕의 영웅담,그러나 잊혀진 영웅담을 복원했다고 보는 편이 옳을지 모른다.그 자신 “일제시대에 자기희생적 삶을 살다 죽어간 혁명가들의 생애를 복구하는 일은 의미가 있다.”고 적고 있다.

비록 “사회주의자들의 긍정적인 모습만 부각시킴으로써 그 이념이 가진 근원적 문제를 가려 버리는,내 스스로 원치 않는 역할을 떠맡게 되는 게 아닐까.”라는 우려를 덧붙이고 있지만,그는 1930년대에서 광복에 이르는 암흑기에 이들이 민족의 가냘픈 희망이었음을 애써 부정하지 않는다.

작가는 이 작품을 ‘진혼곡’이라며 “광복 후 찬탁운동으로 남한에서 대중적 기반을 상실하고,북한에서도 숙청당하는 등 남북한 모두에 버림받은 조선의 국내파 운동가들을 위해서….”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80∼90년대를 ‘운동 현장’에서 보낸 작가의 치열한 삶이 이처럼 진지한 작품을 낳았다면,그가 새삼 “나는 사회주의자가 아니다.”고 부연하는 태도가 조금은 부자연스럽다.소설의 무게를 다는 작업에서 작가의 이념적 성향은 별로 고려되지 않기 때문이다.사람들은 ‘고요한 돈강’의 미하일 솔로호프를 ‘위대한 작가’로 기억할 뿐 ‘위대한 사회주의 작가’라고 말하지 않는다.1만 2000원.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2004-08-13 3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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