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인의 기도문] 기도할 수도 없는 슬픔
수정 2004-07-21 00:00
입력 2004-07-21 00:00
- ‘증오살인’에 대한 기도문
봉숭아 백일홍 채송화가
고향의 꽃밭에서 정겹게 미소짓는 여름
매미 쓰르라미가 하루종일
삶의 열정을 노래하는 여름
더위를 식히려는 많은 사람들이
오늘도 바닷가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노니는 모습을 봅니다.
장마가 물러선 자리에 들어선 찜통 열기로
간밤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아니 더위보다는 들려오는 소식이 하도 끔찍해
잠을 잘 수 없었고
불안과 공포의 옷을 입은 악몽에 시달리며
몹시 괴로웠습니다.
“기도할 수도 없는 슬픔만이 나의 기도”라고 힘없이 고백하며 눈물이 났습니다.
아무런 잘못도 없이 어느날 갑자기 무참하게 살해 당한 우리의 가족들이
하도 가엾어서 눈물을 흘립니다.
악을 즐기는 듯 죄짓기를 작정한 듯
멈추지 않고 손에 피를 묻힌 잔인한 한 사람이 너무 밉고도 가엾어서 눈물을 흘립니다.
꽃보다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인간이 인간이기를 포기하면 어찌되는 것일까.
참사랑은 가능한 것일까.
다시 한 번 숙고하며 진리를 의심하고 오늘의 삶에 회의를 느끼는 우리 자신이 가엾어서 눈물을 흘립니다.
진정 큰 사랑은 믿음이고 조건 없는 용서라고 배웠지만 때론 갈피를 못잡고 흔들리는 우리입니다.
어떻에 믿어야 할지 어떻게 용서해야 할지 답답한 마음엔 곰팡이가 피고
눈빛은 실망과 탄식으로 흐려져 맑은 기도가 되질 않습니다.
밖에서는 칼을 든 전쟁으로,안에서는 자신과 이웃과 화해 못한 전쟁으로
어둡고 괴롭고 무거운 우리에게
제대로 싸울 힘을 주십시오.
선으로 악을 이길 힘을 주시고 사랑으로 미움을 녹일 힘을 주십시오.
사실은 내가 잘못하고서도 모든 일에 늘 남의 탓을 하며 습관적으로 변명하며 살았습니다.
옆에서 어려운 일이 생겨도 체면 때문에 모른 척하거나 이기심 때문에 문을 닫아걸고는
한 발짝 더 밖으로 나갈 사랑의 용기가 부족했습니다.
웬만한 일에는 잘 놀라지도 않는 우리의 냉랭함과 무딤을 용서하십시오.
남의 불행과 비극을 곧잘 자신의 흥밋거리로 삼는 우리의 뻔뻔함을 용서하십시오.
이제 죽음의 냄새를 생명의 향기로 바꾸어야겠습니다.
무관심의 차가운 벽을 따뜻한 사랑의 웃음으로 허물어야겠습니다.
그 사람의 죄는 곧 우리의 죄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게 해 주십시오.
남의 죄를 비웃기 전에 우리의 죄와 잘못도 반성하며 울 줄 아는 겸손을 배우게 해 주십시오.
생명을 그리워하는 마음,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기도의 시작임을 다시 알게 해 주십시오.
삶이 절망에 빠질수록 희망만이 생명입니다.사랑만이 살 길입니다.
우리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는 이해심과 자비심을 조금씩 더 키우고 가꾸어서
그 누구도 내치는 일이 없게 해 주십시오.
그 누구도 죄의 노예가 되지 않는 기쁨을 허락해 주십시오.
“나는 내가 행하겠다는 선을 행하지 않고 안 하겠다고 생각하는 악을 행하고 있습니다(로마7:19)”라고 한 사도 바울로의 고백을 묵상하는 이 순간.나는 내 마음 깊은 곳에 촛불을 켜고 이렇게 기도해 봅니다.
“제가 하고 싶지만 해선 안 되는 악을 행하지 아니하고 하기 싫지만 꼭 해야만 되는 선을
실천하는 지혜와 용기로 저의 삶이 깨어 흐르게 하소서.선의 빛 안에서 행복하게 하소서.”
이해인(수녀·시인)
2004-07-21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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