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지구촌 인물] ③ 야세르 아라파트
수정 2004-12-23 07:39
입력 2004-12-23 00:00
그 별은 바로 야세르 아라파트 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말한다. 지난 35년간 그가 없는 팔레스타인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그만큼 막강한 영향력을 가졌다는 얘기다. 아라파트는 평생을 바쳐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을 추구했다. 그러나 생전의 숱한 노력은 물거품이 됐고, 오히려 그의 죽음이 독립국가 건설을 위한 초석을 놓았다고 할 수 있다. 이같은 아이러니는 ‘평화와 테러’라는 두 얼굴을 가진 아라파트를 웅변적으로 설명해준다.
그의 사인을 둘러싸고 독살설이 여전히 나오고 있는 것은 테러의 측면이고, 팔레스타인이 다음달 9일 후임 자치정부 수반을 뽑기 위한 선거를 치르는 등 ‘포스트 아라파트’ 시대를 활짝 열어가고 있는 것은 평화의 측면이다. 후임 수반이 유력시되는 무하마드 압바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은 이스라엘에 대한 무장투쟁은 잘못된 것이며 이제 팔레스타인은 무장투쟁을 포기해야 한다고 촉구하고 나섰다. 아라파트와의 차별화다.
미국과 이스라엘은 물론 유럽도 압바스를 중동 평화를 이뤄내는 데 적절한 파트너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에 따라 압바스의 당선은 곧 중동 평화협상의 본격화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여전히 아라파트라고 할 수 있다. 아라파트는 분명히 죽었지만 한편으로는 죽지 않았다고 할 수도 있다. 그가 추구해온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의 이념이 모든 팔레스타인인들의 가슴에 신앙처럼 자리잡고 있고, 그가 내건 이스라엘에 대한 무력투쟁의 기치를 하마스와 이슬람 지하드 등 젊은 무장단체들이 답습하고 있어서다. 결과적으로 독립국가 건설이란 이념은 그대로 이어나가되 무력투쟁과 테러라는 그늘을 어떻게 걷어낼 것인지가 압바스에게 주어진 과제다. 압바스가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해낼 수 있느냐에 따라 앞으로 중동 평화의 앞날이 가려지게 될 것이다.
압바스는 이미 시리아와 쿠웨이트, 레바논 등을 방문, 그동안 소원했던 이들 국가와 팔레스타인간의 관계를 개선하는 등 외곽에서부터 중동 평화를 향한 정지작업을 벌여나가고 있다.
외부 여건도 호전되고 있다. 우선 이스라엘에서는 리쿠드당과 노동당이 연정 구성에 나서면서 가자지구 내 정착촌 철수가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다음달 런던에서는 중동평화를 논의하기 위한 회의가 열린다.
하지만 아직도 아라파트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무력투쟁을 고집하고 있는 강경 무장단체들이 골칫거리다. 압바스가 이들 단체 지도자들을 명실상부하게 자신의 휘하로 끌어들일 때, 진정으로 아라파트 시대가 막을 내리고 압바스 시대가 열릴 수 있다.
중동 평화는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남아 있는 아라파트의 잔재를 얼마나 빨리 걷어내느냐에 달려 있는 셈이다.
유세진기자 yujin@seoul.co.kr
2004-12-23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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