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도쿄방재 vs 국민행동요령/황성기 논설위원

황성기 기자
수정 2017-09-07 22:40
입력 2017-09-07 22:38
유튜브에 ‘전쟁 가방’이란 검색어를 치면 관련 동영상이 4800개나 나온다. 인기가 높은 게 ‘30만원짜리 일본 지진 대비 생존 가방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인데, 조회 수 180만을 넘었다. 일주일 전 방송인 강유미가 올린 ‘전쟁가방 샀어요’도 36만 조회를 기록 중이다. 전쟁 불안에 차분히 대비하는 시민들이 늘고 있다. 1993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직후와 1994년 1차 북핵 위기 때 쌀과 생수 등을 사재기했던 기억이 23~24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도쿄도가 2015년 펴낸 재난 대비 매뉴얼북 ‘도쿄방재’(2015년 초판 무료 750만부 발행)의 무료 파일이 한국의 블로그나 카페에서 공유되고 있다고 한다. 323쪽의 책자를 다운로드해 보니 무력 공격을 비롯해 지진, 풍수해 등 어떠한 재난에도 꼼꼼히 대비할 수 있을 만큼 충실한 구성이 놀랍다. 시민 세금을 잘 쓰고 있구나 하고 무릎을 쳤다. 우리의 국민재난안전포털(www.safekorea.go.kr)의 몇 쪽 안 되는 ‘국민행동요령’과는 비교가 안 된다.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 화성14형 2차 시험발사(7월 28일)와 6차 핵실험(9월 3일) 사이의 급박한 시기에 실시된 8월 말의 민방위훈련은 여느 때와 다름없는 관(官), 그들만의 행사였다. 외국 언론들이 “한국 너무 태평하다”고 비웃을 정도였다. 2017년 위기에 대비하려고 우리 국민이 유튜브, 심지어 일본 관청의 방재 매뉴얼로 공부하는 건 정상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국민 세금으로 ‘한국 방재’라도 만들어 조용히 배포하면 어떤가.
2017-09-08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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