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어벤져스2’ 옆 ‘부곡 하와이’/황수정 논설위원

황수정 기자
수정 2015-05-19 18:42
입력 2015-05-19 18:00
우리가 걱정할 일이야 물론 아니다. 할리우드가 싸 짊어지고 갈 돈 보따리는 이미 ‘대박’이다. 매출액이 900억원에 가깝다. 홈그라운드인 북미를 빼면 우리가 전 세계에서 최고의 뭉칫돈을 챙겨 준 나라다. ‘어벤져스2’의 흥행 성적과 영화적 성취는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별개의 사안이다. 서울 로케이션을 할 때부터 국내 언론들은 날마다 앞다퉈 지면을 열어 줬다. 개봉을 앞두고 방한한 주연 배우가 인사동을 찾아 쇼핑 인증샷까지 올렸다. 그런 전략적인 맞춤기획 이벤트까지 두루 감안한다면 성적은 오히려 기대치 미달이다. 시험지를 미리 준 것도 모자라 ‘오픈 북’의 특혜를 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국내 스크린 2300여개 중 1800개까지 ‘어벤져스2’가 판쓸이할 때 웬만한 영화들은 미리 알아서 재앙을 피해 갔다. 이 영화가 전국 통틀어 하루 1만번을 틀어 대는 난리통에 조용히 간판을 걸었던 영화가 있다. 4년의 우여곡절 끝에 선보인 ‘부곡 하와이’다. 지난해 하반기 영화진흥위원회에서 다양성 영화 개봉 지원작에 선정됐다. 앞서 영화는 바르샤바 국제영화제에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뒤늦게 다양성 영화의 자격을 얻어 구색 맞추기용 개봉이 가능했던 셈이다. 매표소 앞에서 이 ‘참한’ 로드무비의 포스터에 공들여 시선을 보내 준 이가 몇일지 궁금하다.
‘어벤져스2’에 비친 서울의 모습이 후줄근하다고 불만이 많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서울 촬영을 지원한 만큼의 성과가 없다는 얘기들이다. 그건 별 문제가 아니다. 재미를 못 본 투자라면 앞으로 하지 않으면 그만이다. 진짜 문제는 우리의 문화적 상상계가 부지불식간에 그 영토를 뺏기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정 문자를 해독하지 못하는 답답한 눈처럼, 우리의 문화적 취향이 비늘처럼 얄팍해지는 중이다.
신수원(마돈나)·홍원찬(오피스)·한준희(차이나타운)·오승욱(무뢰한) 감독의 작품이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돼 연일 세계영화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모두 우리가 먼저 알아보지 못한 영화들이다. “영화제에 초청받은 기쁨보다 (앞으로 치러야 할) 국내 개봉이 더 무섭다”는 오 감독의 현지 소감이 너무 많은 것을 대신 말해 주고 있다.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2015-05-20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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