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단원(檀園)과 단원고/서동철 논설위원
수정 2014-04-28 18:01
입력 2014-04-28 00:00
안산 단원고등학교 역시 지역이 가진 역사성을 그대로 물려받았다. 단원고는 안산의 도시화가 가속화하면서 2005년 개교한 신생 학교지만, 그 역사의 실마리는 18세기 후반 단원이 활동을 펼치던 시대로 올려잡아도 아주 망발은 아닐 것이다. 요즘은 어느 때보다 창의적 인재의 중요성이 강조되는 시대가 아닌가. 이런 시대에 창조적 예술 활동으로 역사에 뚜렷한 흔적을 남긴 위대한 화가의 정신이 담긴 학교에 다닌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단원고 교가의 2절에도 ‘예술의 향기 품은 단원 동산에… 창조하는 마음으로 인격을 모아’ 라는 구절이 보인다. 단원의 예술가 정신을 이어받고자 하는 교육적 의지의 표현이다.
안산의 문화적 전성기는 조선 영·정조 시대로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성호사설’을 지은 실학의 거목 성호 이익(1681~1763)과 시·서·화의 삼절로 이름 높았던 표암(1713~1791), 단원이 지역의 문화적 토양을 비옥하게 했다. 물론 최근에는 단원의 고향이 한양의 수표교 아랫마을이었고, 표암 역시 서울의 염천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며 안산의 처가를 오고 갔을 뿐이라는 미술사학계의 연구가 나오기도 했다. 하지만 단원이나 표암이 성호처럼 평생토록 안산에 정주(定住)하지 않았다는 연구를 받아들이더라도, 두 사람과 안산의 관계를 부정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단원고 학생과 교사, 학부모는 지금 극복하기 어려운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그럴수록 단원고를 고통의 대명사라는 이미지가 굳어지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 천재 화가의 이름을 붙인 학교답게 창조적 정신이 분출하는 국가대표급 학교로 성장하도록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 나가면 어떨까. 그리하여 더욱 자랑스러운 학교가 되었을 때 지금은 가능하지 않을 진혼(鎭魂)도 점차 이루어질 수 있을지 모른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2014-04-28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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