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바나나의 추억/박록삼 논설위원
박록삼 기자
수정 2019-06-13 01:00
입력 2019-06-12 21:04
그때부터 엄마를 졸랐다. 엄마는 큰맘 먹고 소풍 전날 바나나 한 개를 사줬다. 소풍 때 김밥에 사이다, 과자 한 봉지면 족하던 시절 최고의 호사였다. 들뜬 마음에 밤새도록 바나나를 만지작거리다 잠들었다. 아침에 깨보니 바나나는 다 뭉개져 있었다. 대성통곡하니 보다 못한 엄마는 다시 하나를 사주마 약속했지만, 그 아침 문을 연 과일가게는 없었다.
40년이 흐른 지금 몇천원이면 한 개가 아니라, 열댓 개가 달린 한 송이를 살 수 있을 만큼 바나나는 흔한 과일이 됐다. 그 옛날 그 맛도 아니다. 1980년대 자체 재배해 그 나름대로 번성하다 1993년 우루과이라운드 타결 이후 밀려든 수입 바나나에 자취를 감췄던 국산 바나나가 다시 재배된단다. 흐릿한 사진 속 장면처럼 남은 옛 기억들도 다시 새록새록 잎을 틔운다.
2019-06-13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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