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명당’ 그 후/이종락 논설위원
이종락 기자
수정 2018-11-19 22:40
입력 2018-11-19 22:16
그럼 영화 이후의 역사는 어떻게 전개됐을까. 대원군의 아들은 고종황제, 손자는 순종황제가 됐으나 직계 장손은 얻지 못했다. 1868년 독일 상인 오페르트가 보물을 찾기 위해 이 무덤을 파헤쳤지만 도굴에는 실패했다. 대원군이 대로하고 천주교를 더욱 박해하는 등 쇄국정책으로 치달았다. 당시 천주교는 서구문물을 전파하는 역할을 했다. 서구문물을 일찌감치 받아들인 일본에서는 오페르트 도굴 사건 1년 전인 1867년 메이지유신이 시작됐다. 메이지 정부는 부국강병의 기치하에 근대화를 추진해 53년 뒤 조선을 강제병합했다. 남연군의 묘를 가야사에 씀으로써 대원군 후손만 그친 게 아니라 조선의 명맥마저 끊긴 것은 아닌지 궁금해진다.
이종락 논설위원 jrlee@seoul.co.kr
2018-11-20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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