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흙수저 풀/진경호 논설위원

진경호 기자
수정 2018-05-15 01:18
입력 2018-05-14 23:08
주말 오후 집앞 화단에 쭈그리고 앉아 이 ‘은수저’들과 수다를 떨다 비루한 풀 한 포기에 눈길이 잡혔다. 화단 앞 아스팔트 도로를 비집고 올라온 녀석은 솜털이나 알아챌 5월 산들바람에도 바들거렸다. 아는 이도 없을 이름이 외려 수치스러울 잡풀들…. 고개를 돌려보니 계단 사이 틈새에도, 담벼락 모서리에도, 콘크리트 전봇대 허리춤에도 녀석들이 진작 있었다. 보잘 것은 애당초 제 잘난 사람의 눈맛일 뿐, 금수저 은수저가 따로 없을 존귀한 생명임을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바람보다 먼저 눕는 풀이라 했나. 귀를 대면 거실과 화단의 ‘잡풀’을 향한 녀석들의 외침이 들린다. “네 따위들이 풀이라 할쏘냐.” 바람보다 먼저 일어날 풀들이다. 그만 마음을 빼앗겼다.
jade@seoul.co.kr
2018-05-15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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