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모르는 꽃/황수정 논설위원

황수정 기자
수정 2017-09-21 22:49
입력 2017-09-21 22:46
혼자 오래 속 태우다 통성명한 꽃이 또 능소화다. 붉지도 노랗지도 못해 엉거주춤 수줍은 주홍꽃. 오가는 담벼락이 야단스러워지면 저런 요염한 꽃을 누가 내놓았나, 얼굴 본 적 없는 집주인이 다 궁금했다. 이름을 몰라 속정이 먼저 깊었던 꽃, 나의 여름꽃.
휴대전화로 꽃을 찍으면 대번에 이름을 찾아주는 장치가 있다니. 모르는 꽃이 없어졌다는 것은 그리울 일이 없다는 것. 맥문동, 능소화를 기다리지 않는 것. 나의 꽃이 없어지는 것.
억새와 갈대를 분간 못해도 괜찮다. 계절 어느 쯤에 발목이 잠겨야 억새는 만개하고 갈대는 만발하는지. 억새를 들추지 않고서 시월을 기다리기를. 갈대가 궁금해서 가을에 더 바짝 다가서기를. 한 줌 볕도 놓치지 않기를.
황수정 논설위원 sjh@seoul.co.kr
2017-09-22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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