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불초(不肖)/최용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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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규 기자
수정 2017-03-10 18:10
입력 2017-03-10 17:56
타고 거칠어지면 어떠랴. 세종대로에 내리쬐는 봄볕이 마냥 싫지 않다. 양지가 내켜 몸이 절로 따라 갔으나…. 종종거리는 걸음 속에 뒤섞인 거리의 인파들. 꽉 다문 입술, 냉정한 눈빛, 게다가 납덩이 같은 표정들. 청명이 멀리 있지 않고 춘분이 코앞인데 거리의 봄은 여전히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어찌 시운을 탓하랴. 군(君)이 현명하지 못하면 민(民)이 위태로워지고 어지러워지는 것을. 사랑이 뭔가. 이롭게 해 주고 해롭게 하지 않는 것이다. 기쁘게 해 주고 화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누구를?

민을 제쳐 놓고 족속(族屬)을 사랑했기에 패가망신을 자초한 것이다. 재앙은 결코 천시에 달려 있지 않다.

좁고 험한 길에 막 들어섰다. 사기가 필요한 때다. 괴로움과 수고로움을 같이할, 진흙탕을 같이 걸을 이가 있어야겠다. 불초한 이를 뒤안길로 보냈으니 도리를 알고 나라의 기운을 뻗게 할 이 누구인가. 밝은 눈과 밝은 귀를 가져 일개 족속이 아닌 민의 눈, 민의 귀로 들을 수 있는 그런 사람 말이다.

최용규 논설위원 ykchoi@seoul.co.kr
2017-03-11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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