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아파트에 산다는 것/최광숙 논설위원

최광숙 기자
수정 2015-10-02 00:41
입력 2015-10-01 23:44
걷다 보니 뭔가 이상하다. 가만 보니 살고 있는 아파트를 지나 5, 6라인에 간 것이다. 한 번도 아니고 연거푸 두 번이나 헛발질을 하다니. 다리 힘이 빠지면서 갑자기 어질어질 현기증이 일었다. 하늘을 쳐다보니 아직도 푸르다. 밤이 아닌 게 속상하다. 한잔 술이라도 걸쳤으면 마음이 편할 텐데 말짱한 정신이 오히려 민망하다.
성냥갑 같은 아파트의 미로에 빠져 갈팡질팡한 하루가 새삼 아파트의 삶을 되돌아보게 했다. 공장에서 찍어낸 상품마냥 가지런히 진열대에 놓여 있는 것 같은 아파트. 잠깐 한눈팔면 내 집을 코앞에 두고도 헤매는, 무서운 곳이다. 요즘 방송에서 텃밭 딸린 전원주택을 보면 눈길이 한참 머문다. 영혼이 깃들지 않은 아파트의 삶을 청산하고 싶은 마음, 어디 나뿐일까.
최광숙 논설위원 bori@seoul.co.kr
2015-10-02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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