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일수거사’/육철수 논설위원
수정 2013-03-01 00:35
입력 2013-03-01 00:00
며칠 전, 정년 퇴임한 뒤 소설가로 변신한 K교수와 저녁을 함께했다. 그는 한 달에 보름은 남쪽 섬에서 생활한다. 최근에 불교 관련 장편 역사소설을 써서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분이다. 워낙 재담이 좋아 얘기를 나누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소설을 쓴 게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다. 헤어질 무렵, 그가 몇 마디 툭 던졌다. “이번에 ‘호’를 하나 지었어요. ‘일수거사’(一水去士)라고…. 거~ 뭐, ‘한물 간 선비’란 뜻이죠.” 일행은 그만 폭소를 터뜨리고 말았다.
작가의 길로 들어섰으니, 멋있는 호를 가져 풍치를 누릴 자격 충분하지…. 그런데 남자 불도를 일컫는 ‘거사’(居士)를 살짝 비틀어 갖다붙인 재치가 빛난다. 웃자고 한 농담이겠으나, 그는 호에다 ‘한물 갔다고 우습게 여기지 말라’는 뜻도 담았으리라.
육철수 논설위원 ycs@seoul.co.kr
2013-03-01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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