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종부(宗婦)/허남주 특임논설위원
수정 2011-07-12 01:12
입력 2011-07-12 00:00
결혼 초, 종가를 방문했던 적이 있다. 그날 여든의 종부 할머니는 처음 만난 나를 마치 오매불망 보고 싶던 막내딸을 대하듯 그렇게 반겨주셨다. 거칠어서 버석거리는 손으로 내 손을 마주 잡으며, “추운데 오시느라 고생했네, 고생했네….”라고 말씀하셨다. 그런데, 그 말씀에선 추워서 고생한 것이 아니라 낯선 집안의 새 식구가 되느라 고생했다는 격려와 이해의 마음이 읽혀졌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는 듯 내 어깨를 두드려 주는 손길이 너무나 따뜻했고 든든했다. 그렇게 가족이 됐다.
할머니와 나는 같은 성씨의 자손을 낳았다는 것뿐, 그후 다시 뵐 기회도 없었다. 하지만 그 짧은 인연으로 가족의 윤리를 배웠다. 별말 없이, 투박하지만 진한 마음을 전하는 종부 같은 어른이 되고 싶다.
허남주 특임논설위원 hhj@seoul.co.kr
2011-07-12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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