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라일락/허남주 특임논설위원
수정 2011-05-19 01:02
입력 2011-05-19 00:00
어느 날, 흐드러지게 핀 라일락 나무 아래에서 쉰 즈음의 선배들이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마치 꽃 향기를 폐 깊숙이 들이마시기라도 하듯. 넥타이를 조여매고 감색 양복 윗저고리를 입은 그들의 행동이 낯설어 보였다. “라일락 향기는 아직 잘 모르겠지?” 선배가 겸연쩍게 웃었다. 그 물음이, 웃음이 무슨 뜻인지 몰랐다.
라일락이 지고 있다. 금연빌딩 부근 어디나 그렇듯 라일락 나무 아래에는 담배 피우는 사람들이 많다. 꽃 향기는 희석되고 만다. 오늘, 라일락 나무 앞에서 심호흡을 하다가 흠칫 놀랐다. 아, 꽃말이 ‘젊은 날의 추억’이라든가 ‘첫사랑의 감격’이라든가. 라일락 향기를 마시던 선배들도 그날, 아련한 젊은 날을 추억했던 것일까.
허남주 특임논설위원 hhj@seoul.co.kr
2011-05-19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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