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상 첫 현직 대통령 수사, 성역 없음 보여줘야
수정 2016-11-05 00:51
입력 2016-11-04 18:28
여야, 특검 도입 논의 시작하고 담화에 담긴 약속 꼭 지켜져야
박 대통령이 ‘검찰 조사가 불가피하다’는 여론을 실기(失期)하지 않고 수용한 것은 다행스럽다. 핵심 당사자인 최순실씨가 범죄 사실을 대부분 부인하고,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이 출범하는 과정에서 대기업에 기금 출연을 압박한 혐의를 받고 있는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책임을 떠넘기는 상황에서 대통령의 진술은 사건의 진상을 재구성하는 열쇠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TV 카메라 앞에서 검찰 수사를 받겠다고 공표하는 현직 대통령의 모습은 국민을 자괴감에 빠지게 하기에 충분했다.
박 대통령의 담화는 진상을 밝히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요인을 스스로 제거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는 데서도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 검찰이 대통령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면 ‘직접 조사’와 ‘서면 조사’를 놓고 적지 않은 시비가 일어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박 대통령은 담화에서 “이번 일의 진상과 책임을 규명하는 데 있어서 최대한 협조하겠다”면서 “이미 청와대 비서실과 경호실에도 검찰의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도록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검찰은 조사 대상에서 성역이 사라졌듯 조사 방식에서도 성역이 없다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야당이 박 대통령의 담화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사건의 파장을 고려하면 당연하다고 본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당장 “박 대통령과 새누리당은 국민과 야당이 요구하는 별도 특검과 국정조사를 즉각 받아들이고 대통령은 그 수사에 응하시라”고 촉구했다. 새누리당과 야 3당은 특별검사 도입에는 벌써 합의해 놓고 상설 특검이냐 특별검사법에 따른 별도 특검이냐를 놓고 대립하고 있었다. 그런 만큼 여야는 대통령의 특검 수용 의지를 현실화할 수 있도록 다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대한민국호(號)는 벼랑 끝에 서 있다. 국민의 자존심은 이미 낭떠러지 아래로 추락한 상태다. 우리는 어제 대통령 담화가 국정 정상화와 국민의 자존심 회복을 위한 고뇌에 찬 결단이라고 믿고 싶다. 사면초가에 몰린 정치인의 살아남기 위한 정치적 수사(修辭)가 아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검찰 수사는 대통령 개인의 치욕이 아닌 국민 전체의 치욕이다. 담화에 담긴 약속은 지켜져야 한다.
2016-11-05 23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