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수능 난이도 조절 실패, 황우여 장관이 책임져야
수정 2014-11-15 02:36
입력 2014-11-15 00:00
일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말까지 나오는 수능이 실력이 아니라 운에 의해 결과가 좌우된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학업 능력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 누가 실수를 더 하지 않느냐는 경연장이 된 꼴이다. 실수로 틀린 한 문제로 목표로 한 대학에 떨어지거나, 운에 따라 당락이 좌우되는 비교육적인 현상도 빈번할 것으로 우려된다.
지난 8월 황우여 교육부 장관이 “수능 영어를 절대평가로 바꾸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다”고 밝힐 때부터 영어가 쉽게 나올 것이라는 것은 예견됐다. 절대평가를 하면 영어공부에 매달리지 않아도 되고, 사교육비도 줄어들 것이라고 잘못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당시에도 이에 대해 물정을 모르는 순진한 생각이라는 반론이 많았다. 오히려 학력의 하향 평준화를 불러오고, 수능에서 영어가 중요하지 않게 되면 수학과 국어 쪽으로 사교육이 더 몰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일종의 ‘풍선효과’다. 이번 수능에서 영어가 변별력을 잃으면서 밤잠을 설치며 영어 공부에 매달려 온 아이들은 헛수고를 한 꼴이 됐다. 수능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도 없이 무턱대고 쉽게만 내면 다 좋은 것이라고 오판한 황 장관이 확실하게 책임을 져야 한다.
수능의 난이도는 두고두고 뒷말을 낳는다. 쉽다는 ‘물수능’뿐 아니라 어렵다는 ‘불수능’ 때도 마찬가지다. 2002학년도 수능 때는 생소하고 까다로운 문제가 많이 출제돼 1, 2교시가 끝나자 중도에 시험을 포기하고 눈물을 터뜨리며 집으로 돌아가는 학생이 속출했다. 직전 시험이 너무 쉬웠기 때문인데 당장 널뛰기 난이도로 아이들이 골탕 먹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쉽게 출제한다는 정부의 약속을 믿었다가 충격을 받은 학부모와 학생들을 생각할 때 매우 유감스럽다”고 사과를 해야 했다.
수능은 일정 점수만 넘기면 모두 똑같이 합격하는 운전면허시험이나 공인중개사시험 같은 자격시험이 아니다. 대학 정원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경쟁은 불가피하다. 그래서 변별력을 갖춘 문제가 출제돼야 한다. 문제가 쉽다고 모두 원하는 대학에 갈 수도 없고, 소위 명문대에 갈 수도 없다. 수능은 상대적인 시험이다. 시험의 기본 상식을 도외시하고, ‘물수능’으로 혼란을 부채질하고 눈치작전만 양산하게 만든 책임을 교육 수장인 황 장관이 져야 한다. 제비뽑기로 대학을 들어가는 게 아니라면 시험에는 변별력이 있어야 한다. ‘얼치기 전문가’들이 주장하듯 무조건 쉽게 낸다고 능사가 아니다. 수시에서도 수능 등급이 중요하지만, 정시에서는 특히 수능의 상대적인 점수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변별력이 없는 시험으로 무엇을 하라는 것인가.
2014-11-15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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