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불심검문 불응이 범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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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9-01-15 00:36
입력 2009-01-15 00:00
경찰이 불심검문에 응하지 않는 시민을 처벌하겠다는 고집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경찰은 틈만 나면 관련 법규를 개정해 불심검문 불응을 범죄로 취급하려는 시도를 했다. 현행 경찰관직무집행법은 범행을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자 등 특정한 경우에 불심검문을 하도록 허용하고 있다. 그런데도 2004년과 지난해 직무집행법을 개정, 불심검문을 강화하고 이를 거부하는 시민을 처벌하는 규정을 넣으려다 여론의 역풍을 맞아 포기했다.

그런 경찰이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직무집행법 개정을 다시 추진하는 한편으로 신분증을 제시하지 않을 때는 10만원 이하의 벌금 등을 부과하는 내용의 경범죄처벌법 개정을 따로 추진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직무집행법이 개정되면 경범죄처벌법에 관련 규정을 넣지 않겠다고 한다는데, 이야말로 직무집행법으로 잡지 못하면 경범죄로라도 옭아매겠다는 속내를 보여 주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경찰은 불심검문 대상을 확대하고, 이를 거부하는 시민에 대한 처벌 도입을 추진하는 이유로 그래야만 범죄예방과 조속한 범인 검거가 가능해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시민의 인권은 도외시하고 경찰의 편의만을 추구하는 억지논리에 불과하다. 아울러 군부독재 시절 걸핏하면 시민들을 거리에 잡아둔 채로 신분증 제시를 강요하고 가방을 뒤지던 악습에 미련을 갖고 있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한 발상이다. 불심검문 불응은 범죄가 아니다. 경찰은 시민 일반을 잠재적 범죄자로 치부하는 이 어리석은 시도를 즉각 중지해야만 한다.

2009-01-15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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