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종이배의 추억/에쿠니 가오리
수정 2018-12-06 17:54
입력 2018-12-06 17:36
욕조에 종이배를 띄우고
흔들리는 촛불로 그것을 움직여 주었던 남자를
온몸으로
아이처럼
사랑하고
신뢰했던
먼
밤
욕조에 종이배를 띄우고
온 세계를 일주시켜 준 남자를
흐느껴 울 듯
강아지처럼
사랑하고
신뢰했던
먼
밤
그 화려했던 선상 파티도
사람들도 샴페인도 음악도
달도 바다도 해파리도
종이배의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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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조에 더운 물을 채우고 종이배를 띄운다. 가장자리에 생일 케이크처럼 촛불을 세운다. 비올라의 선율이 흐른다. 욕조 안에서 연인은 종이배를 타고 세계 여행을 한다. 사랑의 여행이고 추억의 여행이다. 나 문득 욕조 안에 차가운 물을 채우고 종이배를 띄운다. 두 사람을 태운다. 트럼프씨와 아베씨. 종이배에서 둘이 보고 마주 앉으면 무슨 표정을 지을까. 자국민의 이익만 대변하고 역사를 외면하는 것은 지도자 이전 인간으로서 하류다. 잘나가고 있는데 뭘? 자부할지 모르지만 10년 후 이들은 늙고 초라한 노인에 불과할 것이다. 알츠하이머에 걸려 말을 더듬고 세상에 없을지도 모른다. 욕조 안의 종이배는 10년을 버틸 수 없다.
곽재구 시인
2018-12-07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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