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무화과 숲/황인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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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17-02-18 01:29
입력 2017-02-17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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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 숲/황인찬

신용목 시인

쌀을 씻다가

창밖을 봤다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그 사람이 들어갔다 나오지 않았다

옛날 일이다

저녁에는 저녁을 먹어야지

아침에는

아침을 먹고

밤에는 눈을 감았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이 시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난 것 같지가 않다. 창문 너머 숲이 있고, 숲 너머에는 옛날 일이 있다. 기억의 우거진 숲은 유리 너머로 이어진 미지이기도 하다. 보이지만 갈 수 없는 곳. 한 번 들어간 그는 영원히 나오지 못할 것이다. 그곳에 닿기 위해선 차라리 눈을 감아야 한다. 어쩌면 그곳을 잊기 위해서 잠이 들어야 한다. 저 꿈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알게 된다. 그곳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사랑이 용인되지 않는 곳보다 더 깊은 지옥은 없을 것이다. 저녁에 아침을 먹고 아침에 저녁을 먹는다고 했다면 조금은 덜 아팠을까? 이 시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난 것 같지가 않다. 그래서 무섭다.

신용목 시인
2017-02-18 2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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