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금숙의 만화경] 사인, 작가의 책에 받아야
수정 2020-02-11 02:17
입력 2020-02-10 17:22
작가는 설령 피곤하고 힘들어도 그런 독자의 마음과 태도에 보람을 느끼며 사인을 계속한다. 물론 모든 작가의 사인회가 비슷하지는 않다. 옆에 앉은 만화가는 줄이 빽빽한데 내 줄엔 한두 사람만 있을 때도 있고 아예 없기도 했다. 그럴 때엔 연습장에 그림을 그리며 독자를 기다린다. 마음은 초조하지만 겉으로는 내색을 하지 않는다. 때로 드물게 만화사인만 받으려는 사람을 만나기도 한다. 나도 몇 번 그런 경험이 있었는데 그들은 사인북을 가지고 다니며 작가에게 그림을 부탁한다. 거절하지 못하는 마음 약한 만화가는 멋지게 그림을 그려 준다. 이름만 쓴 사인이 아니라 그림이기에 그 자체는 훌륭한 작품이며 사인북은 작품집이 된다.
이런 일도 있었다. 어떤 사람이 이탈리아의 어느 유명 작가가 그려 준 사인을 다음날 한 인터넷 사이트에 경매를 올렸다. 이탈리아 작가는 그에 대해 소셜미디어에서 분노와 실망을 표현했다. “몰상식하다”, “책이 아닌 다른 종이에 사인을 해서는 안 된다”, “고소해야 된다”, “우리는 작가를 지지한다”, “사인회를 주최한 페스티벌 측과 출판사는 이제 더이상 작가들을 사인회에 무료로 불러서는 안 된다” 등등 사람들은 댓글과 공유로 격렬하게 분노했다. 재판까지 갈 뻔했던 이 사건은 인터넷 사이트에서 경매광고를 내림으로써 끝을 맺었다. 작가가 책을 들고 오지 않은 독자에게 책 이외의 종이에 그림을 그려 준 성의를 완전히 배반한 경우였다.
수년 전 귀국한 후 나는 처음으로 국내 어느 만화 행사 사인회에 초대됐다. 사인회를 기획한 곳에서 당연히 책을 준비했으리라 생각했다. 도착해서 보니 책은 단 한 권도 없었다. 다른 만화가들의 책상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내 이름이 적힌 테이블 앞에 앉았다. 책이 없으니 사인을 해 줄 수도 없고 난감했다.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만화가들은 줄 선 사람들의 캐리커처를 그려 주고 있었다. 너무나 당연한 듯 보였다. 나는 무얼 해야 할지 몰라 잠시 어정쩡하니 앉아 있다가 내 앞에 선 초등학생에게 “꼬깽이” 캐릭터를 그려 주었다. “우리 아들하고 제 캐리커처 함께 그려 주세요.” 옆에 섰던 아이의 엄마가 내가 그려 준 그림을 보지도 않고 말했다. “아, 저는 캐리커처를 그리지 않는데요.”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의 엄마는 아이를 데리고 다른 만화가의 줄로 달려갔다. 나는 캐리커처를 그리려고 그곳에 간 게 아니었다. 하지만 결국 캐리커처를 그리며 사인회를 마감했다. 사람들은 다른 재밋거리를 찾아 흩어졌다.
최근 대한민국에는 동네책방이 엄청 늘었다. 반가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화가는 신작을 내면 사인회할 기회가 거의 없다. 책을 내도 낸 것 같지가 않다. 책이 출간된 순간만 잠시 반짝하다가 다른 신간에 묻힌다. 북토크나 사인회가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또한 이 기회는 홀로 작업하는 작가들이 유일하게 자신의 작업실에서 나와 독자와 소통하는 시간이다. 강의에 나가지 않고 작업에만 집중하는 작가는 더 그러하다. 책방에서는 책에 사인을 한다. 하지만 행사를 할 때 아직도 구겨진 종이를 내미는 사람이 있다. 쉽게 얻은 그림은 휴지조각처럼 버려질 게 뻔하다.
2020-02-11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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