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어느 배달원의 성탄 카드/김상연 워싱턴특파원
수정 2012-12-15 00:00
입력 2012-12-15 00:00
지난주 미국은 무려 5억 8750만 달러(약 6360억원)가 걸린 ‘파워볼 복권’ 열풍으로 온 나라가 달아올랐다. 행운의 1등 당첨자는 미주리주의 소도시에 사는 50대 서민 백인 부부로 밝혀졌다. 이들은 자녀들과 나란히 앉아 기자회견을 가졌는데, 부모와 붕어빵처럼 닮은 아들 세 명과 달리 6살짜리 딸은 동양계 외모여서 눈에 확 띄었다. 알고 보니 이들 부부가 5년 전 중국에서 입양한 아이였다. 집안이 넉넉하지 않고 친자식이 이미 세 명이나 되는 가정도 남의 핏줄을 선뜻 입양해 키울 정도라는 사실이 천문학적 복권 당첨금보다도 더 오래 잔상으로 남았다.
미국의 유력 케이블뉴스 방송인 CNN은 매년 12월 ‘CNN 영웅(Hero)’이라는 이름의 시상식을 연다. 아카데미상 시상식 같은 화려한 무대 분위기만 보면 한국 TV에서 연말에 흔히 볼 수 있는 ‘연예 대상’쯤으로 오해할 만하지만, 자기 몸을 던져 사회를 위해 영웅적 행동을 한 소시민들을 발굴해 상을 주는 행사다. 더욱 특이한 점은 미국 내 ‘영웅’뿐 아니라 전 세계 각지에서 선행을 한 외국인들을 찾아내 함께 상을 준다는 사실이다. 지난 2일 열린 올해 시상식에서도 자신이 성폭행당한 아픔을 딛고 다른 여성들의 성폭행 예방에 앞장서고 있는 한 아프리카 여성을 비롯해 많은 외국의 영웅들이 미국으로 초청돼 상을 받는 모습이 전국에 생중계됐고, 그들의 감동적인 스토리에 시청자들은 눈시울을 적셨다.
지난달 29일 미국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밋 롬니 전 공화당 대통령 후보를 백악관으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한 뉴스가 화제였다. 선거판에서는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싸운 두 사람이었지만 대선이 끝나자 훌훌 털고 화합하는 모습을 기꺼이 연출한 것이다.
혹자는 미국은 이미 쇠락하는 제국이며, 더 이상 배울 게 없는 나라라고 평가절하한다. 하지만 검은 피부의 이방인도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일하는 사회, 자기 핏줄에만 뭔가를 물려주려 안달하지 않고 남의 핏줄을 제 핏줄처럼 선뜻 품어주는 사회, 영웅을 끌어내리지 않고 만들어 내는 사회, 우물 안을 벗어나 생각의 크기를 세계적 차원으로 넓히는 사회, 승자는 패자를 포용하고 패자는 깨끗이 승복하는 사회가 오늘의 미국이다. 그래서 미국은 숱한 단점과 결함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우리가 더 배울 게 많은 나라라고 저무는 한 해를 돌아보며 생각하게 된다.
워싱턴포스트 배달원에게 크리스마스 카드를 답장으로 써서 문 앞에 놓아둘까 말까를 고민하다가 12월이 다 가고 있다.
carlos@seoul.co.kr
2012-12-15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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