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강기훈의 탄원/임태순 논설위원
수정 2012-07-06 00:00
입력 2012-07-06 00:00
이승만 대통령이 방귀를 뀌자 한 국무위원이 “각하 시원하시겠습니다.”라고 했다는 말은 아부의 대표적 사례로 오늘날까지 회자된다. 자유당 시절 야당의원이던 유옥우(작고) 의원이 이익흥(작고) 내무부 장관이 경기도 지사 때 낚시를 하던 이 대통령이 실례를 하자 이런 말을 했다고 국회에서 폭로하면서 알려지게 됐다. 하지만 이 장관은 이런 말을 하지 않았으며, 뒷날 법정소송을 벌여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유 의원도 야당을 탄압하는 내무장관이 미워 한 방 먹였다고 실토했다. 이 장관은 다행히 명예회복을 했지만 그에겐 아부꾼이라는 오명이 평생 붙어다녔음은 물론이다. 친일 등 그의 삶의 궤적과 행태로 봐선 그가 욕을 먹는 것도 당연하지만 사실이 아닌 것으로 오해를 받는 것은 억울한 일이다.
‘유서대필 조작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강기훈씨의 변호인단이 3년째 재심 개시 여부 결정을 미루고 있는 대법원에 판단을 서둘러 달라는 의견서를 냈다. 이 사건은 1991년 5월 전민련 사회국 부장 김기설씨가 노태우 정권 퇴진을 외치며 분신하자 검찰이 동료였던 강씨가 유서를 대신 써줬다고 발표하면서 불거진 것으로, 진위 여부는 물론 운동권의 도덕성을 놓고 오랫동안 논란을 벌여왔다. 강씨는 유서는 김씨 본인의 것이라는 필적감정결과와 유서를 대필하지 않았다는 과거사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재심을 청구했다. 강씨로선 이념을 위해 남의 생명까지 이용했다는 오명을 벗어던지고 싶을 것이다. 특히 그는 암 투병 중이라고 한다. 대법원의 결정이 서둘러 내려져 명예회복의 기회가 주어져야 하지 않을까.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2012-07-0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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