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선행학습병/임태순 논설위원
수정 2012-05-17 00:00
입력 2012-05-17 00:00
유대인 어머니들은 자녀가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면 “너는 오늘 뭘 물어봤니.”라고 질문한다고 한다. 반면 한국의 어머니들은 “오늘 뭘 배웠니.”라고 묻는다. 능동적으로 배우려는 자세와 교사가 가르쳐주는 것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려는 자세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우리나라 등 극동 3국의 교육열은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는 경구에서 알 수 있듯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하지만 투자 대비 성과는 그리 높지 않아 교육효율은 매우 낮다. 몇년 전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중·고교생 중에서 적지 않은 학생들이 한글을 깨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선행학습을 하는 바람에 초등학교 수업시간에 흥미를 느끼지 못해 우리 글을 읽고 쓰지 못하게 됐다고 한다. 선행학습이 오히려 아이들의 학습 의욕을 감퇴시키고 집중력을 저하시켜 재앙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시민단체인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이 ‘선행학습법 금지법’ 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한다. 학부모들이 선행학습을 시키는 것은 내 자녀가 정규 교과과정에서 앞서야 한다는 이기심과 조급증, 불안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다분히 한국적인 현상이지만 선행학습은 배우는 것에 대한 호기심과 공부에 대한 즐거움을 감퇴시켜 오히려 학력 증진에 역효과를 일으킨다. 선행학습은 또 사교육 수요를 야기하는 대표적인 고비용 저효율 구조다. 고기를 잡아서 아이들 손에 쥐여줄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어야 한다. 아인슈타인과 같은 노벨상 수상자가 되게 하려면 선행학습이 아니라 공부하는 법을 가르쳐 주자. 그러면 부모, 아이들 모두 행복해진다.
임태순 논설위원 stslim@seoul.co.kr
2012-05-17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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