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눈] 현대캐피탈은 알고 농협은 모르는 사실/오달란 경제부기자
수정 2011-04-15 00:42
입력 2011-04-15 00:00
그런데 사고를 수습하는 태도는 정반대다. 현대캐피탈은 고객이 무서운 줄 알지만, 농협은 도무지 모르는 것 같다. 현대캐피탈은 지난 7일 해킹 피해를 인지한 뒤 바로 다음 날 언론과 고객들에게 사실을 알렸다. 노르웨이 출장 중이던 정태영 사장은 소식을 듣고 급히 귀국해 일요일인 9일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그는 고객들에게 사과했고 책임의식도 보였다. 이 회사는 정보가 유출된 것으로 추정되는 고객들에게 일일이 위험을 알렸다.
농협의 대응은 정말로 안일했다. 아니 무책임에 가깝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든지, 알았어도 숨기기에 급급했든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관계자들은 “곧 복구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사고 원인에 대해서는 복구가 먼저라며 함구하더니, 그 복구마저도 예정시간을 수차례 넘겨 지연됐다. 큰소리만 떵떵 쳐놓고 고객과의 약속을 저버린 꼴이다.
경영진의 사죄도 사건 발생 사흘이 넘도록 없었다. 비난이 쏟아지자 14일 오후 늦게 최원병 회장이 사과문을 발표했다.
분통이 터지는 건 고객들이다.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이메일, 전화로 전산 복구 상황을 설명받거나 사과문을 전달받지 못했다. 일부 지점에서는 거액을 예치한 우수고객에게만 개별 연락을 돌려 빈축을 사기도 했다.
이번 사건은 ‘공룡’ 농협이 그동안 얼마나 방만한 경영을 해 왔고 또 고객에게 얼마나 무신경했는지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숙원이었던 신용·경제사업 분리에 성공한들, 고객이 외면한다면 무슨 소용인가. 시중은행과의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농협은 무엇보다 ‘고객 무서운 것’부터 알아야 한다.
dallan@seoul.co.kr
2011-04-1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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