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라스코 동굴 벽화/함혜리 논설위원
수정 2010-09-15 00:20
입력 2010-09-15 00:00
빙하기 말기 인류가 추위를 피해 살았던 것으로 추정되는 라스코 동굴은 주 동굴과 3~4개의 좁고 긴 방으로 구성된다. 벽면은 800여점의 벽화와 암각화로 아름답게 장식돼 있다. 목탄이나 망간으로 선을 그린 뒤 광석을 으깨 검정, 빨강, 황토색, 갈색으로 채색한 동물 그림들은 매우 다양하다. 거대한 들소부터 말, 사슴, 돼지, 이리, 곰, 새, 그리고 뿔이 하나인 상상의 동물과 점성술사처럼 보이는 인물상도 묘사되어 있다. 1만 8000년 전 구석기 시대에 존재했던 인류가 그렸다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고 역동적이며 사실적인 모습이다. 동물 몸체나 동물 가까이에 그려진 수많은 화살과 덫을 통해 이 동굴 벽화는 오랫동안 사냥과 주술의식을 행하는 장소로 사용됐다고 믿어진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잠시 세인의 관심에서 멀어졌던 이 동굴은 1948년 본격적인 관광명소로 개발됐다. 벽화의 불행도 시작됐다. 역사학자, 인류학자, 고고학자 등 학자들뿐 아니라 대규모 일반인 관광객들까지 몰리면서 동굴의 유물은 훼손되고 벽화에 곰팡이까지 감염돼 급속도로 손상됐다. 급기야 프랑스 정부는 1963년 이 동굴을 폐쇄하고 이곳에서 200m 떨어진 곳에 실물과 같은 형태로 ´라스코 2´를 만들어 1983년부터 일반에 공개해 왔다. 문화적 가치가 워낙 크기 때문에 비록 가짜이긴 하지만 매년 25만명의 관광객이 이곳을 찾아 아쉬움을 달랜다.
라스코 동굴 발견 70년을 기념해 프랑스의 사르코지 대통령 내외가 실제 라스코 동굴을 한 시간여에 걸쳐 관람했다. 동굴벽화 보존 방안을 강구하기 위해서였다고 하지만 이들이 누린 ‘특별한 혜택’에 비난이 쏟아졌다. 우리나라의 공정사회 논란과는 성격이 다르지만, 아무래도 좀 씁쓸하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2010-09-15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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