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대장경 DNA/김성호 논설위원
수정 2010-03-27 02:24
입력 2010-03-27 00:00
해인사에 보관 중인 팔만대장경은 불경 1538종을 5100만 글자로 새긴 경판 8만 1350장의 규모. 그래서 흔히 팔만대장경이라 칭한다. 비단 8만여 경판과 불경의 방대한 규모를 지칭한다기보다 가르침과 방향의 포괄적인 내용에 대한 강조일 것이다. 부처님 말씀과 교훈을 세 개의 바구니에 담았다지만 그 내용은 불교의 영역에 국한하지 않는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심지어 남녀상열지사까지 들어 있음을 보면 인간 삶의 총체적 반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240여년에 걸쳐 130만명이 동원돼 빚어낸 이 대작의 중요한 가치는 역시 정성과 마음의 결집이다. 불경 한 구절, 경판 한 장을 마무리할 때마다 절을 한 번씩 했다는 일배일배의 혼과 궤적이 그것이다.
이어령 이화여대 명예석좌교수가 엊그제 ‘2011 대장경천년 세계문화축전’ 국민보고대회에서 전한 말이 흥미롭다. 대장경 속에 한국인이 가진 국난 극복의 독특한 DNA가 들어 있단다. 아무래도 거란, 몽골의 재차 침입에 맞선 위기 극복의 노력과 정신을 든 말일 것이다. 그저 부처님 말씀과 교훈을 집대성한 경판의 범주를 넘어 삶의 고비를 지혜롭게 헤쳐나가기 위한 방법과 길을 대장경에서 찾아보자는 발견이 새삼스럽다. 왕실과 백성이 한마음으로 뭉쳐 완성한 대장경이야말로 국가주의와 개인이 충돌하는 요즘 긴요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는 혜안이다.
세계인들이 우리의 팔만대장경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킨 건 우수한 기록의 보존만을 산 것은 아닐 것이다. 기록에 담긴 정신과 혼의 발견이다. 나라가 어수선한 지금이다. 침체된 경제상황이며 지방선거의 혼란상에 갈등과 반목이 홍수를 이룬다. 봉은사 직영사찰화의 파장과 불꽃은 어디까지 튈지도 모를 상황이다. 이 교수의 말마따나 팔만대장경 속 DNA를 한번 찾아봄이 어떨지.
김성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2010-03-27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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