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시대] 쌀은 대한민국의 ‘살’이다/김준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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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9-10-13 12:44
입력 2009-10-1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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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태 시인
김준태 시인
쌀은 결코 말하지 않아요/쌀은 결코 노여워하진 않아요/쌀은 정말 흐느끼지도 않아요/쌀은 모든 이들에게 힘을 주지만/자신은 좀처럼 그 힘을 몰라요/쌀은 하얗게 하얗게 숨 쉴 뿐/쌀은 누구도 미워하지 않으면서/쌀은 가장 참담하게 죽어버려요/가마니 속에서 성냥통 같은 뱃속에서/쌀은 꾸역꾸역 납작하게 죽어버리지만/어허이 고요하게 피를 적셔요/쌀은 멀리멀리 사라져가면서/또 하나의 기막힌 쌀을 남기고/오늘은 차라리 똥이 돼버려요/쌀은 차라리 사랑이 돼버리네요.

오늘은 필자의 처녀시집 ‘참깨를 털면서’에서 ‘쌀’이란 제목을 가진 시 전문을 다시 읊고 싶은 날이다. 결코 아무렇게나 말하지 않고, 결코 노여워하지도 않고, 결코 흐느끼지도 않는 쌀! 누구도 미워하지 않으면서 모든 이에게 ‘힘’을 주고야 마는 쌀! 나는 이 쌀을 통해서 우리나라 사람의 마음속에 오랜 세월 동안 쌓여온 한결같은 이미지를 떠올린다. 일찍이 농경민족의 후예로서 ‘경천사상’을 다져온 사람들, 나는 우리나라 사람이 매일 아침저녁으로 마주하는 하얀 쌀밥 한 그릇을 때로는 하늘처럼 바라보기도 한다.

거의 종교에 가까운 쌀밥 한 그릇! 수저를 들기 전에 먼저 묵상기도를 드리고 싶을 정도로 우리에게 기나긴 역사와 문화, 그 푸르렀던 삶과 희로애락애오욕의 숨결을 불어넣어주고 있는 쌀밥 한 그릇! 오늘은 그냥 ‘똥이 돼 버릴 수 없는’, 기어이 기어이 ‘사랑으로 거듭나고야 마는’ 볏가마니, 쌀가마니들을 바라보면서 쌀의 울음소리를 듣고 있다. 경상도 지역에서 태어난 사람들은 쌀을 ‘살’이라고 발음한다던가. 그 발음은 재미있는 사투리 현상인데―전라도에 사는 나의 경우도 ‘쌀’보다는 ‘살’로 소리를 하는 것을 좋아할 때가 있다. 배가 고팠을 때, 때로는 한없이 울고 싶었을 때 쌀(米)이 살(肉)의 의미로 다가서기 때문이다.

바로 요즘 같은 때이다. 한해 벼농사를 다 지어놓은 농민들의 아우성이 그 이야기다. 쌀값 폭락에 항의, 벼논을 갈아엎어 버린다는 소식이 도처에서 들려온다.

농민들은 미곡종합처리장(RPC) 앞에서 쌀 반입·반출을 막으면서 “쌀값 현실화와 공공비축미 매입 확대, 대북 쌀지원, 휴경제 도입 등 현실적 대책을 세우라.”고 촉구한다. 올해 쌀 총 생산량은 468만t, 농협의 경우 벼 매입자금(추곡수매)을 늘려 220만t의 벼를 매입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지만.

2008년도 쌀 재고량은 60만t, 올해는 80만t이어서 2400억원가량의 보관비가 소요된다. 따라서 쌀값 폭락, 쌀 재고량 문제는 농림수산식품부뿐만 아니라, 국회외교통상위원회에서도 긴급 ‘의제’로 올려 정부에 묘책(?)을 요구하는 모양이다. 인도주의와 보관비 해소 차원에서 ‘대북 쌀지원’을 계속해야 한다는 얘기가 쏟아져 나온다. 세계식량계획(WFP)과 식량농업기구(FAO) 보고서, 최근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발표에 따르면 북한 주민의 3분의1(900만명)이 절대적으로 식량지원이 필요하다는 소식도 덩달아 들려온다.

자, 그러면 결론을 짓자. 쌀이 남아돈다고 하지만 안심할 일은 못된다. 우리나라는 현재 식량자급도가 26% 안팎으로 매년 1400만t씩 곡물을 들여오는 세계 다섯번째 곡물수입국이다. 정말 지난 십수년 동안 ‘하늘이 도와서’ 벼농사가 풍작이었다. 그러나 만에 하나라도 하늘이 노할 경우, 쌀 재고량이 바닥이 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모두 ‘한 그릇의 쌀밥’ 앞에서 한번쯤 농민이 돼 보자! 농민의 사기를 올려주고 식량안보, 남북의 평화스러운 그날을 앞당기기 위해서라도 ‘쌀값을 사람값처럼’ 올리는 방법을 찾아보자!

김준태 시인
2009-10-13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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