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오일만 논설위원
수정 2009-10-01 12:00
입력 2009-10-01 12:00
마오쩌둥은 중국에서도 성격 급하기로 소문난 후난(湖南) 출신이다. 먹고사는 것보다 이념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후난성은 건국 과정에서 가장 많은 혁명가를 배출했다. 그는 1920∼1930년대 코민테른(국제 공산당)의 지시로 도시 폭동에 주력했다가 파탄난 중국 공산당을 재건한다. ‘농민혁명’이란 새로운 지도 이념으로 불가능에 가까운 혁명을 성공시켰다. 30년 가까이 신중국을 지도한 ‘마지막 황제’였다. 마오가 3000만명이 굶어죽은 대약진 운동의 실패나 문화대혁명의 과오에도 아직까지 중국인의 사랑을 받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덩샤오핑은 생활력이 강한 쓰촨(四川) 출신답게 실사구시의 대명사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黑猫白猫論)이 압권이다. 1992년 보수파들의 반격으로 개혁·개방 정책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하자 89세의 노구를 이끌고 남순강화(南巡講話)를 단행,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섰다. 개혁 개방의 설계사로 머물지 않고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을 발탁하는 등 30년 미래의 중국까지 내다본 것도 그의 공이다.
신중국 60년, 잠자는 용이 욱일승천하는 기세다. 미국과 더불어 G2의 대열에 합세할 날도 멀지 않았다고 한다. ‘강하고 통일된 중국 대륙’이 ‘고난의 한반도’로 귀결됐던 지난 역사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우리의 고민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오일만 논설위원 oilman@seoul.co.kr
2009-10-0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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