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눈] ‘국민’과 ‘테러범’ 사이/김민희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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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9-07-06 00:42
입력 2009-07-06 00:00
지난 2일 서울경찰특공대가 공개한 ‘대테러대응 종합훈련’은 마치 5개월 전 용산참사를 보는 듯했다. 참사 현장인 남일당 건물을 연상시키는 4층짜리 가건물 옥상엔 ‘생존권 보장 투쟁’이라고 쓰여진 파란색 망루가 있었다. 가상의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기중기로 컨테이너 박스를 건물 옥상으로 끌어올려 특공대를 투입시키는 장면도 연출됐다. 살수차로 시위대를 진압하는 시범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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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희 체육부 기자
김민희 체육부 기자
이날 훈련은 ‘국내·외 테러위협에 대응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특공대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라고 경찰은 강조했다. 실제 이 진압작전 이후엔 알 카에다 공작원이 버스를 납치한 경우, 행사장에 폭탄을 갖고 잠입한 경우 등 여러 가상상황이 펼쳐졌다.

기자는 잇따라 벌어지는 상황을 보며 경찰이 용산참사로 숨진 이들을 알 카에다와 동급인 ‘테러범’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

‘용산참사 범국민대책위원회’는 3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경찰특공대가 서민들의 생존권 요구를 테러로 규정하고 앞으로도 다시 살인진압을 하겠다는 의지를 과시한 것”이라며 울부짖었다.

이에 대해 서울지방경찰청 고위관계자는 “가장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사건에 특공대 투입사례를 상정한 것이지, 용산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니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경찰측의 해명이 진심이라 하더라도 굳이 용산 참사를 재연하는 듯한 논란을 불러일으킨 자체만으로 비판받아 마땅하다. 167일째 차가운 영안실에 있는 희생자와 ‘불법집회’ 참가자로 낙인찍히며 여태 장례식도 치르지 못하고 있는 유가족들을 생각한다면 더더욱 신중하게 임했어야 한다. 더군다나 5개월 전 용산 참사 때 직접 진압에 참여했던 것이 바로 경찰특공대 아닌가.



지난 1월20일 불타는 남일당 건물을 바라보며 충격과 혼란에 빠졌던 기자는 이날 대테러대응 종합훈련 현장에서 또 한번 충격과 혼란에 빠졌다. ‘국민’과 ‘테러범’ 사이에서 길을 잃은 채.

김민희 사회부 기자 haru@seoul.co.kr
2009-07-06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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