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시대] 명품길 조성 신중해야/박창호 부산도시공사 감사
수정 2009-06-30 00:44
입력 2009-06-30 00:00
요즘 마음먹고 해안길을 걸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부쩍 늘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마냥 걷기만 해도 ‘웰빙 삶’을 담보하는 청정 에너지원이 될 것 같잖은가. 더구나 곳곳에 펼쳐진 시네마스코프식 해안, 부산 송도와 다대포구를 내려다볼 수 있는 장군산. 두송반도 숲길, 장엄한 낙조로 화장한 낙동강 델타의 정취를 뒤엎을 수 있는 도시가 부산을 빼고 어디 그리 흔하랴.
그동안 왜 이런 천혜의 해변 길을 걸어보지 못했을까.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생태 환경에 몰입하는 것이 생명 사랑인 것을….
부산시가 즉각 ‘걷고 싶은 도시 만들기’를 선언해 화답한 것은 적절하다. 해안길 강변길 오솔길 등 118곳을 만들고, 꼬불꼬불한 해안선 306㎞를 연결하겠다는 것 등의 정책은 생태 환경도시 조성의 의지로 읽힌다. 도시계획차원의 중장기 프로젝트와 조례를 만들고, 민·관이 함께 참여하는 기구 발족 등 챙기고 다듬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고 한다.
그러나 매사가 의욕만 넘쳐 서두르면 그르친다. ‘명품 길’이 두부 모 자르듯 획일적으로 진행되는 것은 별로 반갑잖다. 설사 그렇게 빨리 만들어진 ‘명품 길’이 겉보기에 멋들어진 것이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명품 길’을 만드는 것은 능률과 실적 차원의 문제는 아니다. 그래서 행정기관의 독주보다 다양한 의견을 경청, 수렴함으로써 열린 마음을 모으는 것이 더 중요하다. 많은 시민이 필요성을 절감하고 자발적으로 동참할 때 운동의 순도는 높아지고 밀도는 단단해지기 마련이다.
환경문제에 관한 한 우리는 이미 많은 대가를 치르며, 소중한 경험을 했다. 찬반론이 엇갈리지만, 천성산 터널공사와 관련된 도롱뇽 소송과 지율 스님 단식사건은 큰 진통을 주었다. 잘잘못을 떠나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또한, 올 10월 개통되는 명지대교(가칭)는 철새 도래지를 우회하는 U자형 다리다. 스피드와 능률을 추구해야 할 다리가 강을 똑바로 건너지 못하고 U자형이라니 이런 비효율이 없다는 주장은 얼핏 보아 옳다. 하지만, 인간이 막대한 공사비와 공기를 더 들이며 철새에게 양보했다는 점은 역사에 남을 일이다. “다리가 반드시 직선일 필요가 없고, 생태계 보전을 위해 돌아갈 수도 있다.”는 당시 부산시 환경책임자의 주장은 유연한 사고와 낭만적 역발상의 소산이 아니겠는가.
예전에 우리는 마을에 신작로를 내면 먼저 고사를 지냈다. 행여 사고가 날세라 제물을 차리고 길의 신께 안전을 빌었다. 지금 명품 길 조성을 앞두고 고사를 지내자는 것이 아니다. 중요한 정책을 시행할 때는 몸을 낮추고 귀를 열어 시민과 자연의 소리를 경청해야 할 것이다.
박창호 부산도시공사 감사
2009-06-30 30면
Copyright ⓒ 서울신문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