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줄날줄] 生死一如 / 노주석 논설위원
수정 2009-05-30 00:00
입력 2009-05-30 00:00
낙선했다면 어땠을지 모를 일이지만 ‘방황’이라고 실제 쓴 적은 없었던 것으로 안다. 대통령이 된 후에는 가톨릭보다 불교와 가깝게 지냈다. ‘왕보살’로 불릴 만큼 불심이 깊었던 모친과 독실한 신도인 권양숙 여사의 영향이 컸다. “어릴 적 어머니가 집에 부처님을 모셔놓고 아침마다 독송했는데 그 소리에 잠을 깨곤 했다.”고 술회할 정도로 불교적 분위기에서 성장한 때문인지도 모른다. 가끔 “오늘날의 과학세계를 모순없이 설명하는 힘이야말로 불교가 깨달음의 종교이며 진리의 종교임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불교 예찬론을 펴기도 했다.
“사랑스럽고 마음에 드는 모든 것과는 헤어지기 마련이고 없어지기 마련이고 달라지기 마련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태어났고 존재했고 형성된 것은 모두 부서지는 법이거늘….”이라는 붓다의 말씀이 열반경에 나온다. 붓다는 열반에 들면서 비구들에게 “모든 형성된 것들은 소멸하기 마련이다. 방일하지 말고 해야 할 바를 모두 성취하라.”고 되풀이 말씀하셨다.
노 전 대통령은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이 아니겠는가.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라는 유서를 남겼다. 불교의 생사일여(生死一如)철학이다. 찰나생(刹那生) 찰나멸(刹那滅) 제행무상(諸行無常) 생자필멸(生者必滅)과 상통한다. 모든 존재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무(無)로 돌아가며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없다는 뜻이다. 노 전 대통령의 어제 국민장 영결식은 종교적 구분 없이 치러졌지만 장례는 가족들의 요청에 따라 불교식으로 진행됐다. 극락왕생을 빈다.
노주석 논설위원 joo@seoul.co.kr
2009-05-3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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