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얼굴/송한수 체육부 차장
수정 2009-03-31 01:18
입력 2009-03-31 00:00
중2 때던가. 퍽 신기했다. 젊은 여선생님께서 낭랑한 최신 버전의 경북 표준어(?)를 쓰다니. 미혼이라니 인기가 더했다. 선생님은 그렇게 전근 오셨다. 그런데 어느날 사단이 벌어졌다. 뒷줄에 앉은 키 크고 싱거운 녀석들이 ‘샘’을 놀리는 말을 뱉은 것이다. 그는 울었다. 매를 들었다. 그리고 다음 수업, 이 천사는 “노래 하나 불러줄까?” 하며 방긋 웃으셨다. 노래가 흘렀다. ‘동그라미 그리려다 무심코 그린 얼굴’. 그윽한 눈길, 진짜 누굴 그리는 듯 손짓은 또 왜 그리도 예쁜지.
시간은 잘도 흘렀다. 싱거운 까까머리들이 어느덧 다 자라 다시 뭉쳤다. 댐 건설로 곧 사라질 모교에서 운동회를 열었다. ‘내 마음 따라 피어나던 하얀 그때 꿈’을 군데군데 훑었다. 회장 녀석은 사고나 몹쓸 병마 등을 만나 세상 등진 친구들을 달래자며 식순에 묵념까지 끼웠다. 하지만 ‘천사 여선생님’의 소식을 안다는 녀석은 없었다. ‘동그랗게 동그랗게 맴돌다 가~는 얼굴’. 하늘은 마냥 뿌옇다.
송한수 체육부 차장 onekor@seoul.co.kr
2009-03-31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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