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왜 걱정하십니까? /이용원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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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9-03-04 00:54
입력 2009-03-04 00:00
한때 시인을 꿈꾸었던 그 친구는 시도 때도 없이 이메일을 날려와 잠자는 내 감성을 일깨운다. 이번에 받은 이메일의 제목은 ‘왜 걱정하십니까?’였다. 얼마 전 사다가 집안에 걸어 놓은 액자에는 제목 아래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고 했다.

‘인생의 날수를 당신이 결정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인생의 넓이와 깊이는 당신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얼굴 모습을 당신이 결정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당신 얼굴의 표정은 당신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중략)/ 당신 자신의 힘으로 결정할 수 있는 일들을 감당하기도 바쁜데/ 당신이 결정할 수 없는 일들로 인해 걱정하고 있습니까?’



친구는 전에 읽었다는 책의 내용을 덧붙였다. 1년 전 자신이 무엇을 고민했는지를 1000명에게 물었더니 금방 대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이다. 세상살이가 갈수록 팍팍해져 주위 사람들이 힘들어하는 모습이 보기에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어쨌거나 시인이 되다 만 오랜 친구가 있다는 건 축복 받을 일이다.

이용원 수석논설위원 ywyi@seoul.co.kr
2009-03-04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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