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 칼럼] 쏘아올린 희망… 사회 더 따뜻하길/김성해 한국언론재단 객원연구위원
수정 2009-03-03 00:00
입력 2009-03-03 00:00
이러한 희망 심기에 서울신문이 적극 나서고 있어 반갑다. 우선, 2월4일 1면에는 ‘농촌서 희망 찾기’라는 기사가 나온다. 그 뒤에 ‘낮은 곳 임하신 추기경님 따라 바보 되렵니다’ ‘그래도 이 땅에 계십니다’ 및 ‘더불어 살기 바람분다’ 등이 이어진다. ‘2009 녹색성장 비전’ 기획물로 ‘최고의 태양광 기업에서 배운다’와 ‘쓰레기 혁명 실험’ 등도 소개된다. 또 실직한 가장의 아픔을 다룬 ‘실직 3040 눈물의 출근등산’과 의료정책에서 소외된 난치병 환자들에 대한 ‘그냥 죽어야만 합니까’ 에서는 약자에 대한 배려가 느껴진다.
물론 공정하고 객관적이어야 할 언론에서 녹색성장과 같은 특정한 정책을 옹호하면 곤란하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그러나 국가이익이나 공공이익이 침해받지 않도록 제대로 된 환경감시를 할 경우에는 괜찮다.
다행스럽게도, 서울신문은 사설과 1면을 통해 이 역할을 무난히 수행한 듯하다.
예컨대 철거민 5명과 경찰관 1명의 희생자를 낸 용산참사의 경우 무려 6번이나 다뤘다. 고위직 지역 편중문제, 장애인 지원금 문제와 촛불재판의 편파성 비판을 통해 권력의 남용을 경계하기도 했다.
또한 북한의 미사일 발사 움직임과 미국 오바마 정부의 보호주의 정책을 비판하는 한편, 한·미간 긴밀한 외교적 협력을 촉구함으로써 국가이익이 침해되지 않도록 감시하고 있다.
언론이 특정한 가치나 이념을 옹호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도 있다. 하지만 언론이 증오가 아닌 사랑을, 절망이 아닌 희망을, 교만이 아닌 겸손을, 분열이 아닌 화합을, 차별이 아닌 평등을 주장하는 것은 오히려 권장할 일이다. 그래서 ‘성취도 공개 학력격차 줄이는 계기돼야’ 및 ‘학력격차 해소방안 좀 더 정교해야’ 등의 사설은 ‘차별이 아닌 평등’을 주장한 좋은 사례가 된다.
그럼에도 보다 온전한 희망을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먼저, 국가이익을 안보 측면 그것도 북한 문제를 통해서만 보려는 근시안이 있다. 미국의 동아시아 정책, 중국의 핵무기 개발 논쟁, 중동 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도 안보 차원에서 지속적으로 다루어야 한다.
물리적 안보만큼이나 중요한 금융안보에 대한 관심도 부족하다. 다른 신문사들처럼 1월 말의 다보스포럼이나 2월 중순의 G7 정상회담 정도는 사설에서 취급해도 좋았다.
또 국내 미디어법을 둘러싼 논의는 자세히 다루면서도 중국 CCTV가 아시아판 알자지라를 기획한다는 기사는 소홀히 했다. 그로 인해 글로벌 미디어 기업의 육성을 통한 국가이익의 실현보다 신문사의 사적인 이해관계가 우선되지 않았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
더욱이 용산사태와 달리 희대의 살인마 강호순에 대한 사설은 ‘결국은 과학수사밖에 없다’ 한 편에 불과했으며, 이런 종류의 범죄가 반복되는 구조적 문제에 대한 분석은 부족했다. 끝으로, 동일한 사회적 약자에 속하는 도시 소시민과 이민자들에 대한 관심도 여전히 낮다.
‘좋은생각’ 3월호에 꽁꽁 언 땅을 뚫고 고개를 내미는 ‘앉은부채’ 꽃 이야기가 나온다.
이 꽃이 필 당시 외부 온도는 영하 1.2도였지만 꽃의 입김 덕분에 그 내부는 영상 11도였다고 한다.
그래서 소망한다. 서울신문이 쏘는 이 희망이 글로벌 혹한기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를 좀 더 따뜻하게 보듬었기를.
김성해 한국언론재단 객원연구위원
2009-03-03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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