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섶에서] 묻지 마/황진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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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9-02-26 00:36
입력 2009-02-26 00:00
집들이 초대를 받았다. 알려준 대로 택시를 타고 지하철 역에서 내려 아파트 단지를 찾기 시작했다. 어둑어둑한 초저녁이었다. 하지만 친구가 사는 아파트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마침 반듯한 옷차림의 소녀가 지나고 있었다. 여고생인 듯했다.

“저기요, C아파트가 어디인가요?”

“모르는데요.”

단박에 답이 돌아왔다. 마치 못 볼 사람이라도 본 듯, 못 들을 말이라도 들은 듯 사뭇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C아파트를 아는지 모르는지 알 수는 없지만, 여하튼 알아도 가르쳐 줄 생각이 없는 것이 분명했다.

연쇄 살인사건이 떠올랐다. 내 모습이 무서웠나 자문해 봤지만 누구에게도 똑같이 대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비인간적인 자본주의의 광풍 속에 가슴에 갑옷을 껴입고 비수를 품고 살아간다. 이제 길을 묻는 사람에게도 겁을 집어 먹고 비수 같은 말을 던지는 세상이 됐다. 나그네를 후하게 접대하고 쉴 곳을 마련해 주는 것이 우리의 미덕이었다. 우리는 과연 옛날로 돌아갈 수 있을까.

황진선 논설위원 jshwang@seoul.co.kr
2009-02-26 3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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