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마당]공공박물관 무료관람정책의 그늘/이명옥 사비나 미술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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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08-12-25 00:00
입력 2008-12-25 00:00
최근 미술관을 찾는 관람객 숫자가 눈에 띄게 줄었다.심지어 미술계의 시선을 집중시켰던 세계적인 설치예술가 제임스 터렐 전시회마저 하루 평균 50명 내외의 관람객이 전시장을 찾았을 정도였다(토탈미술관 집계).이처럼 관람객의 발길이 뜸해지면서 사립미술관들의 내년 살림살이에도 비상이 걸렸다.입장료가 유일한 수입원인 사립미술관은 관객수가 감소하는 현상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입장료를 내고 미술관에 오는 관객이 줄어들면 새로운 전시를 기획하고,도록을 발간하고,교육프로그램을 개발하고,미술사적 가치가 높은 미술품을 수집,보존하는 등의 미술관 고유 업무를 수행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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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
이명옥 사비나미술관장
가뜩이나 관람객이 줄어 울상인데 지난 12월8일 문화체육관광부가 전국 12개 국립 박물관과 미술관의 무료관람제를 1년간 연장한다고 전격 발표해 향후 사립뮤지엄의 재정난은 더욱 악화될 상황에 처했다.국민의 문화향수 기회 확산에 동참해야 마땅할 사립뮤지엄이 정부의 무료 관람정책을 원망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것에는 그럴만한 근거가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이 경희대 최병식 교수에게 의뢰해 2008년 10월31일 발간한 ‘국립박물관 무료화 시범실시에 따른 관람객 분석 및 파급효과 연구’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무료관람제가 사립뮤지엄의 경영난을 악화시키는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점이 확연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무료관람제를 실시한 전국 12개 국립박물관 직원 199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51.3%인102명은 향후 무료관람제가 지속적으로 실시될 경우 사립 미술관과 박물관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응답했다.27.6%인 55명은 상당히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응답해 전체 응답자 중 79%가 무료관람제가 사립미술관박물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118개 사립 미술관과 박물관(미술관 50개관,박물관 68개관) 직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207명의 응답자 중 65.2%인 135명이 부정적이거나 부정적인 면이 아주 많다고 응답했다.또한 보고서는 부정적인 영향의 구체적인 사례를 제시했다.▲재정자립도가 낮은 사립미술관·박물관은 입장료 수입 감소로 인해 재정악화를 초래한다.▲사립 미술관과 박물관의 경영난은 종사자들의 일자리를 잃게 하는 불행한 사태로 이어진다.▲이른바 공짜에 길들여진 관람객들은 사립 미술관과 박물관에도 무료관람제를 요구하는 등 입장료를 받는 사립뮤지엄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된다.▲미술관 문화 인식이 현저히 떨어지는 국내 여건에서 무료관람은 미술사적 가치를 지닌 소장품의 훼손 위험성이 높다.▲입장료를 받는 공연 등 다른 예술 장르와 비교해 국민들에게 미술을 값싼 문화로 인식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들었다.



일반인들에게 고급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평등하게 제공하고,예술적인 취향을 대중과 공유하겠다는 정부의 무료관람정책 근본취지에 공감하지 않는 뮤지엄 관계자는 아마도 없을 것이다.하지만 2007년 말 현재 국내 115개 미술관(사립 87개관,박물관 511개관 중 사립 180개관)의 76%를 차지하는 사립미술관이 무료관람제에 따른 피해를 고스란히 떠맡게 돼 경영난이 가중된다면 국내 미술관 문화의 질적 저하를 초래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현 시점에서 절실한 것은 정부가 2008년 5월 무료관람제 실시 이후 4개월 동안 월평균 33.6%의 관람객이 증가한 것으로 나타난 수치에만 집착하지 말고 현장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모니터링해서 정책에 반영하는 자세이다.관람객 감소로 위기감을 느끼는 풀뿌리 뮤지엄의 절망감을 해소시킬 문화부의 후속조치를 기대한다.

이명옥 사비나 미술관장
2008-12-25 3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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